“삭개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

삭개오

삭개오(Zacchaeus), 성경에 그의 이름은 단 세 번 거론되어 있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9장 1절에서 10절까지의 짧은 기록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역사는 오늘날 목회자들의 설교에 자주 인용되곤 한다.

“삭개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
당시 예수님의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큰 논란과 파장을 일으켰다. 삭개오는 세리에 불과한 ‘죄인’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아브라함은 모든 유대인들이 공경하는 ‘믿음의 조상’이었다. 상종해서는 안 될 죄인이, 존경의 대상인 아브라함의 자손의 자리를 꿰찬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당치도 않는 말씀에 유대인들은 수군댔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인자는 삭개오와 같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다”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 취급했지만 예수님은 이 세리에게서 ‘아브라함의 자손’의 모습을 발견하신 것이다. 과연 삭개오의 어떤 믿음과 행적이 예수님을 감동시켰던 것일까?

삭개오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유

지나간 역사는 우리의 교훈을 위해 기록된 것이다(로마서 15:4).
삭개오의 기록이 오늘날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삭개오의 직업, 여리고의 세관장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누가복음 19:1~2)

여리고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한 곳으로, 북쪽의 다마스쿠스, 서쪽의 가이사랴, 이집트의 남쪽를 연결하는 교차로였다. 때문에 상당한 양의 교통이 여리고를 통과했다. 또한 유황, 소금, 발삼 향유 등 가치가 높은 상품이 활발히 거래되고 있어 세금의 수익이 막대했다. 삭개오는 바로 이 막대한 자금을 관리하는 여리고의 세리 중에서도 우두머리 급인 세관장이었다.

당시 세관장은 원하는 만큼 세금을 부과하고 징수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세관장은 로마제국의 조세제도 아래서 유대인들에게 조세 기준보다 과도하게 세금을 부과하여, 일정 부분을 로마에 바치고 나머지는 자신이 착복했다.

오직 하나님만이 물질을 받을 수 있다는 구약의 신정 정치에 익숙한 유대인들은 로마에 세금을 바치는 것을 아주 불쾌하게 생각했고, 그런 일을 업으로 하는 삭개오를 ‘죄인’, ‘동족의 배신자’, ‘로마의 앞잡이’로 취급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질문한 것도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악용한 것으로, 예수님의 대답을 트집잡아 올가미를 씌우려고 한 것이었다(마태복음 22:15~22).

삭개오와 예수님의 첫만남

삭개오와 예수님의 첫만남
Niels Larsen Stevns 作 삭개오

마침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시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여리고를 지나시던 중이었다. 인류의 사망죄를 대속하시려 당신이 친히 유월절 양이 되어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을 내어 줄 것이다(고린도전서 5:7, 요한복음 1:29, 로마서 6:23).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얼마 전 예수님께서 여리고와 가까운 베다니에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기 때문이다(요한복음 11:18~44). 예수님에 대한 호기심을 품은 여리고 주민들과 유대인들이 길가에 진을 쳤고 여리고성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거기에는 삭개오도 있었다.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누가복음 19:3~4)

삭개오는 ‘단신’이라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IVP 성경배경주석에는 그의 키가 150센티미터 이하였을 거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그가 예수님을 보려면 어려운 장애를 극복해야만 했다. 바로 군중이다. 키가 작은 삭개오가 기골이 장대한 무리 속에 들어간다면 팔꿈치나 손으로 머리와 얼굴을 가격당할 수도 있고, 몸이 짓밟힐 수도 있었다. 더구나 그를 경멸하는 유대인으로부터 해를 입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삭개오는 위험을 개의치 않았다. 체면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예수님을 반드시 보겠다는 마음 하나로 어려운 장애를 뚫고 군중을 앞질러 달려가서 뽕나무에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타고 길 위에 매달려 예수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 같은 삭개오의 모습은 그 당시 사회에서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당시 유대인 남성의 기본 복장은 ‘튜닉(일종의 원피스 형태)’으로 나무에 오르면 다리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는 어린 아이들이나 하는 매우 수치스러운 행동이었다. 때문에 중년의 남성이 뽕나무에 매달려 낑낑대고 있는 모습은 매우 교양이 없고 경망스러우며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삭개오는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보기 위해서 자신의 위신, 신분, 자존심, 체면 등을 따지지 않았다. 이것이 삭개오가 한 일이었다.

삭개오는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누가복음 19:5)

삭개오를 충격에 빠뜨릴 일이 일어났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셨지만,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나무 위에 있는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셨다. 그리고 그의 집에 머무르겠다고 선언하신다. 이때 삭개오의 마음이 어땠을까.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기뻐하며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 ‘주님, 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의 것을 속여 뺏은 것이 있으면 4배로 갚겠습니다.’ ···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찾아왔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나는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현대인의성경 누가복음 19:6~10)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삭개오의 고백. 그는 자기 소유의 절반을 싹둑 잘라 가난한 자에게 나눠 주겠다고 선언한다. 더 나아가 사취(詐取)한 것이 있으면 4배로 갚겠다고 말한다. 사실 삭개오가 4배씩이나 갚을 필요는 없었다. 유대 율법을 보면 도적질한 사람이 회개하고 인정할 경우, 전액을 돌려주고 그 값에 5분의 1(20%)을 보태어 배상할 것을 요구한다(레위기 6:2~5, 민수기 5:7).

오랜 세월 동족들의 삿대질과 냉대를 겪으면서도 참아가며 재물을 악착같이 모았을 그가 이렇게 결심한 것은 ‘완벽한 반전’이라 할 수 있다. 그로서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을 영접한 최대한의 행동이었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삭개오에게서 ‘아브라함의 행적’을 보셨던 것이다.

아브라함의 행적

아브라함의 행적
Juan Fernández de Navarrete 作 아브라함과 세 천사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나무 숲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한낮의 가장 더운 시간에 아브라함이 자기 천막 입구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보니 세 사람이 자기 맞은편에 서 있었다. 아브라함은 ···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말하였다.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다면 주의 종을 그냥 지나가지 마소서 ··· 아브라함은 버터와 우유와 요리한 송아지 고기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놓고 나무 아래서 그들이 음식을 먹는 동안 그들 곁에 서 있었다 ··· 여호와께서 ‘내년 이맘때에 내가 반드시 너에게 돌아올 것이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현대인의성경 창세기 18:1~10)

가나안 헤브론으로 추정되는 마므레 상수리 숲에서 누군가 나그네의 신분으로 아브라함에게 등장했다. 성경은 둘의 대화가 진행되면서 이 나그네가 결국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다. 즉 천둥과 번개와 나팔 소리로만 존재하시던 하나님이 한낱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다(출애굽기 20:18).

이때 아브라함의 자세를 주목해야 한다. 때는 뜨거운 한낮이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나그네를 반기기 매우 어려운 시각이었다. 더구나 아브라함은 사막 지대에서 살고 있었다. 사막 지대의 사람들은 대개 이 시간에 점심을 먹든가 그렇지 않으면 낮잠을 잤다고 한다.

성경학자들은 아브라함 역시 뜨거운 대낮에 천막 입구에 앉아 졸고 있었는데, 맞은편에 웬 세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부랴부랴 그들을 영접했다고 말한다. 노곤할 때, 누군가를 맞이하기 까다로울 때, 환영할 수 없는 시각에 나그네가 등장한 것이다. 못 본 척, 모른 척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브라함은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을 환영했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실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이 아브라함이 지닌 믿음이었다. 때문에 아브라함은 나그네의 모습을 한 하나님을 극진히 대접했고 자신을 떠나 지나가지 말라고 붙잡았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마므레 상수리에서 하나님께 보였던 환대의 정신은 약 1500년 후 삭개오가 그대로 재현한다. 삭개오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훈장과 같은 칭호를 받은 것은 그가 유대인이기 때문도,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도 아니다. 아브라함이 한 일을 그대로 행했기 때문이다(요한복음 8:37~40).

성령과 신부를 대하는 자세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사도 요한이 본 놀라운 계시.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생명수를 주시려고 초정하시는 장면이다. 어떤 이들은 신부가 목사나 신도라고 얘기하는데, 성경은 생명수가 하나님만이 줄 수 있는 영역이라고 말한다(요한계시록 21:7~8). 2천 년 전 유대인들에게 추앙받던 율법학사,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이 있었지만 생명수는 초라한 목수의 아들 곧 사람으로 등장하신 그리스도께서 베푸셨다(요한복음 4:10~14).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하셔서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모습을 종종 기록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인류가 ‘성령과 신부를 어떤 자세로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전형적 모본의 근거가 된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나타나셨을 때 너무 기뻐 곧바로 장막문까지 달려나간 아브라함의 역사, 위험과 체면을 개의치 않고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을 영접하고 참된 회개를 한 삭개오의 역사, 그리고 성령과 신부께서 생명수를 주시려고 인류를 초청하시는 오늘날 우리의 역사.

많은 사람이 인정하든 말든 성령과 신부가 나그네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계신다. 성경은 하나님이 성령과 신부 되어 잃어버린 영혼을 손수 찾아가시는 기록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전 세계에 흩어진 영혼들을 친히 구원하시는 역사로 귀결하고 있다.

지나간 역사는 반복된다(전도서 1:9). 아브라함과 삭개오의 기록을 본 우리의 마음은 어느 곳을 향해야 할까.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자는 하나님과의 어떠한 만남도 구원도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참고자료>
1. 유재덕, 『성경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도서출판 작은행복(1999).
2. 존 맥아더, 『주님 없는 복음』, 생명의말씀사(2017).

댓글
  1. 양승훈

    이 시대 사람 되어 오시는 성령과 신부를 삭개오와 같이, 아브라함과 같이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극진히 영접하는 제가 되겠습니다!

  2. 부산아자아자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죄인을 구원하시려 사람되어 임하여 주신 성령과 신부되신 엘로힘하나님 아버지어머니께 진심으로 감사 올립니다.

  3. soo in Moon

    삭개오는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삭개오의 모습을 통해 저의 모습도 마음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돌아보게 됩니다:)

  4. Meina113

    삭개오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인정을 받았던 그 자세를 마음에 새깁니다.

  5. 박미영

    이시대의 성령과신부를 영접할수있다는것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큰영광입니다.
    이자녀에게 어머니의 크신사랑을 깨닫게 하여주시고자녀삼아주셔서 선지자의 사명허락하여주심에 무한감사를 올립니다.

  6. 김은희

    2020년 새로운 시작~~ 감동이 물밀듯 밀려 옵니다~
    저도 삭개오에 대한 마음, 아브함과같은 마음으로 성령과 신부께 나아가는 믿음이 되어 보겠습니다~

  7. 칼라잉크

    삭개오와 같음 마음으로, 그리고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행동하는 믿음으로, 저도 아버지 어머니께 나아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겠습니다~

    1. Robert

      배경지식까지 잘 활용하셔서 설명해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삭개오와 같이 아브라함과 같이 이 시대 등장하신 성령과 신부를 감사로 영접하는 자녀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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