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 비유 | 되찾은 아들과 곁에서 수고한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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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 비유의 배경과 시대 상황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된 이른바 ‘탕자 비유’는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들어보았을 만큼 널리 알려진 이야기로, 문학과 미술을 아우르는 수많은 예술 작품의 모티브가 되어왔다.

2천 년 전 당시,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가까이하며 함께 식사하는 모습을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며 수군거리고 예수님을 비난했다(누가복음 15:1~2). 그들의 불평에 응답하듯, 예수님께서는 연이어 세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기뻐하는 목자 비유(누가복음 15:3~7), 잃은 드라크마 한 개를 찾아 기뻐하는 여인 비유(누가복음 15:8~10),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이 탕자 비유다.

렘브란트 판 레인, <돌아온 탕자>, 캔버스에 유채, 에르미타주 미술관 소장.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퍼블릭 도메인).

비유의 시작은 당대 역사적, 법적 배경을 비추어볼 때 다소 충격적이다. 구약성경에 명시된 상속법에 따르면, 장자는 두 몫을, 차자는 한 몫의 유산을 받게 되어 있었다(신명기 21:17). 비록 아버지가 생전에 자녀의 미래를 위해 유산을 미리 떼어주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긴 했으나, 이는 철저히 아버지의 ‘자발적인 은혜’에 속했다.

아버지가 버젓이 살아있음에도 자식이 유산을 미리 요구하는 것은, 당시 사회 통념상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는 것과 진배없는 불효이자 패륜이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내게 돌아올 분깃을 미리 나누어 달라”고 당돌하게 요구하며 탕자 비유의 서막을 연다.

이 비유는 흔히 ‘집 나간 둘째 아들의 회개와 아버지의 용서’에 초점이 맞춰져 회자되곤 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집으로 돌아온 둘째 아들의 극적인 귀환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비유의 결말은 잃었던 동생을 위한 잔치 밖에서 분노하는 맏아들과 그를 다독이는 아버지의 대화로 맺어진다.

탕자 비유 속 둘째 아들, 모든 것을 잃고서야 깨달은 것

탕자 비유에 등장하는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미리 유산을 챙겨 먼 나라로 떠났으나, 그의 화려한 삶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그는 허랑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그 땅에 큰 흉년까지 들어, 그는 들판에서 돼지 치는 일을 시작한다. 돼지를 먹이는 쥐엄(Carob) 열매로라도 주린 배를 채우고자 했지만, 그마저도 주는 이가 없는 비참한 처지로 전락한다.

철저히 모든 것을 잃고 생사의 기로에 놓인 순간에야, 아들은 비로소 풍족했던 아버지의 집을 떠올린다. 자신이 하늘과 아버지에게 큰 죄를 지었음을 뼈저리게 뉘우친 그는 감히 아들의 자격을 되찾겠다는 기대조차 품지 못하고 그저 품꾼의 하나로라도 자신을 거두어 주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돌린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누가복음 15:20~24)

아버지의 반응은 아들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다. 아버지는 저 멀리 있는 초라한 행색의 아들을 단번에 알아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춘다. 둘째 아들의 지난 잘못을 다 알고 있음에도 어떠한 질책이나 조건도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죄를 뉘우치고 품으로 돌아온 사실 그 자체를 기뻐한다.

자신을 종으로 써달라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즉각 제일 좋은 옷을 내어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긴다. 이는 종이 아닌 자유인이자 아들로서의 지위를 완전하게 회복시켜 주었다는 상징적인 묘사다. 이처럼 탕자 비유는 살진 송아지를 잡아 큰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자식을 향한 맹목적인 사랑과 긍휼을 여실히 보여준다.

탕자 비유가 그리는 맏아들의 서운함과 억울함

탕자 비유에서 또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둘째 아들이 돌아온 것을 안 맏아들의 반응이다. 둘째 아들이 돌아와 집 안에서 잔치의 흥겨운 소리가 울려 퍼질 때, 밭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맏아들의 반응은 아버지와 전혀 달랐다.

맏아들이 집에 다다랐을 때,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들은 그는 종을 불러 무슨 일인지 물었고, 유산까지 챙겨 집을 나갔던 동생이 돌아와 아버지가 살진 송아지를 잡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이에 맏아들은 심히 노하여 집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결국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직접 밖으로 나와 그를 간곡히 달랜다.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누가복음 15:28~30)

맏아들의 분노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다. 그는 동생이 아버지의 속을 썩이고 재산을 탕진하는 동안, 아버지 곁에 남아 묵묵히 일하며 장남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 그의 눈에 동생은 마땅히 징계를 받아야 할 죄인이었다. 그런데 어떠한 죗값도 치르지 않은 동생이 도리어 맹목적인 환대를 받는 것을 보자, 그는 자신이 그동안 기울인 수고와 헌신이 부정당했다고 생각하며 서운한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탕자 비유의 마지막 대화, 아버지는 다 알고 있다

억울함을 토로하는 맏아들에게 아버지는 분명하게 대답한다. 이 마지막 대화 속에 탕자 비유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누가복음 15:31~32)

아버지는 둘째 아들의 지난 방황과 허물을 다 알고 있음에도, 철저히 죄를 뉘우치고 돌아온 그의 마음을 헤아려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다. 동시에 “내 것이 다 네 것”이라는 말로 맏아들이 오랜 시간 묵묵히 이어온 수고와 헌신 역시 결코 가볍게 여기거나 잊지 않고, 다 알고 있음을 분명히 확인시켜 주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 부모에게 귀하지 않은 자녀는 없다. 다만 상처를 먼저 보듬어 주어야 하는 좀 더 아픈 손가락이 있고, 오랜 시간 곁에서 위로가 되어주어 금가락지를 끼워주고 싶은 손가락도 있을 뿐이다.

탕자 비유가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

탕자 비유는 회개하고 돌아온 자녀를 꾸짖지 않고 기뻐하며 맞아주고, 서운해하는 맏아들을 집 밖까지 나와 달래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감동과 교훈을 남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방황하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며 나아오는 자녀의 마음을 아시고 기뻐하시며 조건 없는 사랑으로 안아주신다. 또한 먼저 신앙의 길에 들어서 진리 안에서 수고해 온 자녀들의 헌신 역시 전부 알고 헤아리고 계신다.

그러므로 먼저 부름을 받아 신앙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이라면, 자신의 공로를 앞세우는 계산적인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참된 연합은 잃은 자녀로 인한 부모의 애타는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장성한 자녀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아직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한 잃어버린 형제를 찾는 일에 겸손히 동참하고, 마침내 그를 찾았을 때 마땅히 함께 기뻐하며 정성껏 돌보는 것. 그것이 탕자 비유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남기신 하나님의 부탁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1~5)

〈하나님의교회 설교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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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탕자 비유 | 되찾은 아들과 곁에서 수고한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대답”에 대한 4개 응답

  1. 손가라라라락! 댓글:

    저도 하늘 부모님께 위로가 되고,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손가락이 되고 싶네요~

  2. 형상이 댓글:

    많은 생각을 하게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모든것을 받은 자로써 이제는 형제 자매를 위해 희생하며 베풀며 살겠습니다~♡♡♡

  3. Luke 댓글:

    아버지의 마음은 두 아들 다 사랑하지요.
    이제는 아들로서 아버지의 마음을 감히 헤아려봅니다..

  4. 강다솜 댓글:

    무한한 사랑을 허락하여 주시는 아버지,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받은 사랑을 온전히 전하는 사랑의 자녀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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