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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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발생 배경

종교개혁, 초기에 로마가톨릭의 비성경적인 교리와 세속적인 타락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초기에는 가톨릭의 사제 중심의 신앙이 아닌 오직 하나님과 성경을 중심으로 삼자는 정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가톨릭이 지배한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교회는 너무나 많은 진리를 잃어버렸고, 무엇이 진리인지 확인할 수조차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결국 프로테스탄티즘은 신학자들 간에 서로 다른 관점과 성경해석으로 인해 각 신학자의 주장에 따라 각 국가마다 성결파, 침례파, 회중파, 퀘이커, 루터파, 메서디스트파(감리교), 장로파, 청교도, 개혁파교회, 유니테리언파 등의 다양한 종파로 분열되어 더욱 혼란스러운 시대로 빠져들게 되었다. 종교개혁 한계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종교개혁의 한계

수많은 개신교 교파가 저마다 성경대로 행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난립하였지만 안타까운 것은 여전히 가톨릭의 비성경적인 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일요일 예배다. 일요일 예배는 로마가톨릭이 안식일을 폐지하고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태양신 숭배일로 제정한 일요일 휴업령을 받아들인 비성경적인 교리다. 그러나 성경대로 행하겠다는 개신교가 여전히 비성경적인 일요일 예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오히려 로마가톨릭으로부터 어머니교회(로마가톨릭)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방의 빌미를 주고 있다. 가톨릭출판사에서 발행한 ‘억만인의 신앙’이라는 책에서는 개신교를 ‘집을 박차고 나가긴 하였지만 호주머니 속에 어머니의 사진이나 머리카락 한 줌을 늘 지니고 다니는 탕자’에 빗댔다. 종교개혁을 부르짖으면서 가톨릭의 권위로 세워진 일요일 예배를 지키는 모순적 행태를 아주 적절한 비유를 들어서 비판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개신교는 태양신 탄생일에서 비롯된 크리스마스 축제 행사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비성경적인 로마가톨릭에서 벗어나겠다며 종교개혁 선언을 하였지만 여전히 로마가톨릭의 교리를 답습하고 있다.

댓글
  1. 시온의 검

    사단의 소굴에서 뛰쳐 나온다고 하였지만, 그 혈통이 변하지 않은 동일한 적 그리스도의 단체군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생명의 언약은 다 부인하면서도 입술로만 하나님을 찾는 종파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2. 비타1004

    종교개혁을 했다하지만 아직도 성경대로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까워요.

  3. […] 패스티브: 종교개혁의 한계 […]

  4. 숑숑💨

    성경은 하나인데 많은 종파가 분열되어 생겼다는게ㅠ
    완전한 개혁이라고 볼 수 없을 것 같아요~

  5. 쏠트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어야 할 교회들이 카톨릭 권위 아래에 속해서 비성경적 내용을 성도들에게 가르친다는 사실이 참 속상하네요ㅠ 하나님의 진리 편에 서야 하지 않을까요?!

  6. 유나이티드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진짜 종교개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종교개혁이다 라고 하는게 참…그렇네요

  7. 강남콩

    비성격적인 로마 가톨릭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상고해야 합니다.

  8. 물방울

    일요일예배와 크리스마스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는 것은 진짜 종교개혁인 아님을 알려주는 확실한 증거인것같습니다.

  9. 장바견

    종교개혁을 옳바로 성경대로 행했으면 좋았을거같아요ㅜ

  10. 장바견

    일요일예배는 안식일이 아닙니다ㅜ

  11. 수민

    아직도 비성경적인 교리가 많이 남아잇네요..

  12. 사사

    종교 개혁은 사실 권력의 분배 과정일 뿐입니다. 십자군 전쟁 당시 최전성기였던 가톨릭 교회 권력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한편으로 세속정치권력이 떠오르는 상황이었죠. 특히 가톨릭의 본산이었던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북유럽 지역은 더욱 그랬고요. 사실상 영향력이 사라졌음에도 꾸준히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교황청에 반발한 정치세력들이 많았고, 그 과정에서 루터가 불을 붙였다 보는게 타당합니다.
    실제 종교개혁을 통해 수많은 나라들은 교황청의 권력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세속국가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새로 등장한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은 두번다시 권력의 역할을 할 수 없었죠. 칼뱅 계열이 정교일치 프로테스탄트 국가를 꿈꿨지만 세속 군주들이 프로테스탄트를 바라본 것은 세상에서 종교의 분리를 위해 이용한 것일 뿐, 그들이 다시 세상을 지배하는걸 원치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종교개혁 초기에 등장한 각 개신교 파들은 국교회 형식으로 거꾸로 국가의 체제 아래로 들어갔습니다.
    이는 실제 역사에서도 나타나요. 종교 개혁 이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들은 서로 아웅다웅 싸우기도 했는데, 프로테스탄트 중 정교일치를 꿈꾸는, 지금으로 치면 근본주의 기독교파인 청교도들은 그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햇으니깐요. 그렇게 그들이 박해를 피해 간 곳이 신대륙 – 미국입니다. 하지만 그 청교도들은 미국으로 간 사람들 중 일부일 뿐, 다양한 사람들이 미국으로 갔고, 실제 미국 건국은 정치의 종교로부터 완전한 분리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유럽과 달리 종교에 대해 크게 터치하지 않았고요… 그럼으로써 우리가 흔히 보는 수많은 개신교 교파들이 생겨나게 되었죠. 그리고 때로는 그것을 넘어서 신흥종교 수준의 교파들도 많이 생겼고요.

    역사를 보다 보면 교회 입장에서 종교개혁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합니다. 종교 개혁 당시 개혁의 대상이었던 가톨릭은 과연 지금도 그러한가? 가톨릭을 비판했던 개신교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가? 종교 개혁 이후 나오는 과학적, 고고학적 발견 등에 대해 개신교는 오히려 더욱 소극적인 대응이지 않는가 등등 많은 생각을 합니다.

    종교 개혁 관련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들러 한마디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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