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수백 년 전 유럽에서는 가톨릭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의 봉기로 일련의 대격변이 일어났다. 종교개혁, 그 면면을 들여다보자.

종교개혁의 태동

종교개혁(Reformation)은 16~17세기 유럽에서 가톨릭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순수한 신앙을 회복하고자 일으켰던 운동을 말한다. 이 운동에 가담했던 사람들을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 부르는데, 프로테스탄트는 ‘항거’를 뜻하는 라틴어 ‘프로테스타티오(Protestatio)’에서 유래된 말로, 이를테면 ‘가톨릭에 항거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종교개혁을 통해 프로테스탄트는 당시 온 세상을 점령하고 있던 가톨릭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며 사람들을 각성시켰다. 가톨릭은 배교자 프로테스탄트를 ‘이단’으로 간주해 처형하거나 무차별적인 학살을 자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가톨릭에 회의감이 든 사람들을 돌이키지는 못했다.

프로테스탄티즘은 많은 지역, 많은 국가로 빠르게 퍼졌다. 프로테스탄트는 종교개혁을 벌이는 동시에 성경 본위의 믿음을 강조하며 성경을 연구했다. 그리고 각기 나름의 교리를 정립하고 새로운 교회를 세웠다. 현재 개신교(신교, 프로테스탄트교회)라 부르는 여러 종파의 교회들이 그것이다. 즉, 구교인 가톨릭과 신교의 분리는 종교개혁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데,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루터교, 구세군, 성공회 등 다양한 교리를 가진 다양한 교파로 분열되는 부작용을 낳았던 것이다.

종교개혁가들

피터 왈도

교회사를 살펴보면, 가톨릭에 최초로 반기를 든 사람은 12세기 프랑스의 피터 왈도(Peter Waldo)다. 그는 한때 가톨릭 사제로 고용돼 라틴어 성경과 신학서들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일을 했다. ‘성경대로 하자’는 그의 설교는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왈도파’를 결성하여 선교활동을 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왈도파에 가담하자 위협을 느낀 가톨릭은 그들을 이단으로 단죄하고 그들과의 교제를 금하는 명령을 내리고 급기야 신도들을 화형에 처했다. 왈도파는 약 200년간 가톨릭의 박해를 받으며 산으로 피신해 살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신도들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갔다. 그들의 최후는 끔찍했다. 1486년 교황 인노첸시오 8세는 골짜기에 숨어 있던 2만여 명의 왈도파 신도들을 죽이고 불을 질러 몰살시켰다.

존 위클리프와 얀 후스

피터 왈도와 더불어 영국의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체코의 얀 후스(Jan Hus)는 본격적인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 서막을 열어준 인물들이다. 존 위클리프는 구원의 유일한 권위를 성경에 두었고, 교황에 대한 공세(公稅: 국가나 단체가 필요한 경비를 국민들로부터 강제로 거두어들이는 돈), 교회령(敎會領), 성직자들의 부패상을 강하게 비판했다. 사후 그는 이단으로 단죄되어 시신과 저서가 모두 불태워졌다.

위클리프의 사상은 체코의 얀 후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후스는 가톨릭 성직자들의 비리와 성직매매 등을 비난하며 위클리프의 전철을 밟다가 1415년 7월 6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마르틴 루터

이후, 1483년 독일에서 종교개혁의 길을 닦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태어났다. 그리고 이듬해 1484년에는 스위스에서 울리히 츠빙글리가, 1509년 프랑스에서 장 칼뱅이 태어났다. 루터는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도 구원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 겸 사제로 지내며 로마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그는 그토록 가보고 싶어 했던 로마 교황청에 다녀온 후 더욱 낙담에 빠졌다. 추기경의 호화스러운 대저택, 교황의 무수한 사생아들, 음란과 돈으로 부패한 사제들, 도무지 그리스도의 정신은 찾으려야 찾아볼 수 없는 본교회의 타락상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로마는 성베드로성당의 건축비 명목으로 면죄부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살인, 간음 등 아무리 큰 죄라도 면죄부 하나만 사면 그것을 구입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미 죽어 지옥에서 고통받는 가족과 친척까지도 금화가 면죄부 판매통 속으로 ‘쨍그랑’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내는 동시에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광고했다.

루터는 “면죄부 판매는 불법이며 악마의 짓”이라고 격렬히 규탄했다. 그리고 정면으로 선전포고를 하며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여 가톨릭의 죄악상을 만천하에 폭로했다. 이후 루터는 교황청으로부터 이단으로 낙인찍혀 파문당했다.

성베드로성당
로마 바티칸의 성베드로성당

울리히 츠빙글리

울리히 츠빙글리(Ulrich Zwingli)는 스위스 취리히대성당의 사제로 지내며 설교자로 활동했다. 그는 친구들과의 만찬에 참석했다가 교구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그들이 만찬을 한 때는 사순절 기간이었다. 가톨릭은 사순절에 육식을 하면 안 되는 규례를 엄격히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이 감히 소시지를 먹은 것이다.

츠빙글리는 소시지를 먹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을 변호했고, ‘음식의 선택과 자유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통해 단식규율이 성경적 근거가 없음을 강조했다. 이후 그는 성화상, 십자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가톨릭의 비성경적인 교리들을 지적했다. 1531년 가톨릭군과의 전투에서 종군목사로 활약하다 전사했다.

칼뱅

그로부터 5년 후인 1536년, 프로테스탄트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만한 획기적인 책이 발간됐다. 장 칼뱅(Jean Calvin)의 『기독교강요』다. 칼뱅은 이 책을 통해 개신교의 교리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개혁가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었다.

개신교를 향한 가톨릭의 만행

가톨릭에서는 1545년부터 1563년까지 18년간 종교개혁가들이 문제 제기를 했던 교리들을 재정비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트리엔트에서 회의(트리엔트공의회)를 여는 등 개혁운동의 불을 꺼뜨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개신교의 봉기를 멈출 수는 없었다.

그 과정에서 가톨릭은 개신교도들을 상대로 피비린내 나는 학살을 벌인다. “프랑스와 가톨릭을 위하여”라는 외침 속에 자행된 ‘성 바르톨로메오(바돌로매) 축일의 대학살’이 그것이다. 1572년 8월 24일,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무자비한 학살은 한 달여간 계속됐다. 가톨릭 사제들은 잔인무도한 살인마가 되어 한 손에는 십자가를, 한 손에는 검을 든 채 “개신교도라면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이라도 용서하지 말라”며 개신교인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가톨릭교도들까지 합세해 개신교인이라면 무조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살해했다. 프랑스 전역으로 확대된 가톨릭의 만행으로 수만 명의 개신교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이 끔찍한 살인행각에 대한 소식을 전해들은 로마 교황청은 가톨릭의 승리를 자축하며 기념주화를 만들기도 했다.

성바르톨로메오축일의 대학살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프랑수아 뒤부아 作]

개신교는 분명 가톨릭에 대항하여 개혁을 일으켰다. 그러나 성경에 입각한 완전한 개혁은 하지 못했다. 가톨릭이 바꾸어놓은 비성경적인 교리를 그대로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일요일예배다. 가톨릭출판사에서 발행한 『무엇하는 사람들인가?』라는 책에는 십계명에 대해 논하는 한 신부와 신도의 대화가 실려 있다.

송 군: 그러면 가톨릭교 아닌 다른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는 소위 성서대로만 한다면서 왜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내지 않고 일요일을 주일로 지내죠?
박신부: 아니, 그런 문제까지 끌어내면 곤란한데요. 그들의 종교란 가톨릭에서 나간 것이니까 가톨릭을 모방할 수밖에 없잖아요. 신약 성서에 분명히 일요일을 주일로 지내라는 말은 없습니다. 다만 금방 말씀드린 그러한 이유로써 교회의 권위로 정한 것뿐입니다.

또, 가톨릭출판사에서 발행한 『억만인의 신앙』이라는 책에도 비슷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그렇지만 성서에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로 명시되어 있으니 성교회로가 아니라 성서에서부터 직접 종교를 끌어 왔다고 우기는 가톨릭이 아닌 이들도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정말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실은 개신교가 태어나기 15세기 전에 이렇게 변경된 것으로, 개신교가 탄생된 당시에는 이것이 보편적인 관습이 되어 있었다. 이것은 비록 성서에 명시된 글에 따른 것이 아니고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둔 것이지만 그들은 이 관습을 그대로 계속해 오고 있다. 이것은 가톨릭이 아닌 교파들이 갈라져 나간 자모이신 성교회의 기념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마치 집을 박차고 나가긴 하였지만 호주머니 속에 어머니의 사진이나 머리카락 한줌을 늘 지니고 다니는 탕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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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김경숙

    카톨릭의 만행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으리만큼 잔인하고 포악하네요. 그런 카톨릭에 대항하여 종교개혁을 펼치며 죽어간 종교개혁자들의 수고와 희생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들도 카톨릭에서 빠져나온 한 인간이기에 하나님의 완전한 진리는 알 수 없었고 진리의 개혁은 이루지 못한채 역사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완전한 진리의 개혁은 이 시대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께서 이루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진리를 다시 회복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마음의창

    종교개혁가들이 목숨바쳐 한 일이 집을 박차고 나간
    탕자 수준이라니 재밌네요.

  3. 쏠트

    종교개혁의 전반적인 내용을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유익한 글 감사해요~~

  4. 제비꽃

    수많은 종교개혁자들이 있었지만 완전한 진리의 개혁은 이루지 못한 것 같습니다.
    카톨릭의 비리를 비판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만들어 놓은 모든 제도를 다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진정한 종교개혁 진리개혁은 재림 예수님께서 오셔야만 가능한 것 같습니다.

  5. 유나이티드

    진정한 종교개혁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을 이루어가시는 이분이 누구신지 꼭히 알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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