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지켜야 할 것

2 1,033

1517년 10월 31일은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 판매에 대해 항의하며 ‘95개조 반박문’을 독일 비텐베르크 성의 교회 문에 붙인 것이다. 이 반박문은 독일 민중들을 계몽시켰다.

그로부터 500년이 흘렀다. 2017년의 기독교는 안타깝게도 개혁과 거리가 멀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패스티브는 ‘종교개혁 500주년 특집’을 통해 기독교의 민낯을 살펴보고, 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진단해보고자 한다.


이천 년 전, 예수님의 행보는 그야말로 ‘종교개혁’이라 부를 만했다.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던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으셨던 것이다. 안에서부터 곪아가던 유대교의 문제점을 거침없이 지적하신 예수님의 행적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귀감이 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천 년 전 예수님께서 추진하신 한 종교개혁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예수님의 종교개혁

종교개혁 예수님 성전
성전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을 내쫓으시는 예수님(귀스타브 도레 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의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시더니, 제물로 거래되던 짐승들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셨다. 이 장면은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장 과격한 행적이다. 무엇이 그토록 예수님을 분노하게 만들었을까?

종교 지도자들이 지키고 싶었던 것들

매년 절기가 다가오면 예루살렘은 여러 지방에서 온 유대인들로 북적였다. 그들은 먼 여행길에 소나 양 등 제물을 가져오기도 어렵고 예루살렘에서 통용되는 화폐도 달라 불편을 겪는 일이 많았다. 이스라엘의 20세 이상 모든 남자는 성전세를 내야 했는데 이는 유대인의 화폐인 세겔로만 내야 했다. 당시 통용되던 로마 화폐에는 황제의 얼굴이나 기타 우상 등이 찍혀 있어서 우상숭배의 염려가 있었던 탓이다.

제물을 파는 자들과 환전상들은 이 점을 이용했다. 다른 지방의 유대인 방문객들이 가지고 온 화폐를 세겔로 바꿔주거나 제물을 성전 앞에서 팔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성전 앞에서 장사나 환전을 하려면 절차가 필요했다. 바로 제사장들의 승인이다.

제사장과 상인들의 결탁은 필연적으로 부패를 불러왔다. 제물을 파는 자들은 비둘기 한 마리를 팔 때도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렀고, 환전상들은 기본적으로 원금의 20%를, 많게는 50%까지 수수료를 챙겼다. 제사장들은 이들과 긴밀히 협조하며 부당한 이익을 챙겼다. 그곳은 투기판이지 더 이상 성전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이에 분노하신 것이다.

상인들과 유착하여 쏠쏠한 수입을 챙기고 있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종교개혁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과는 달리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들은 점점 늘어났다. 결국 위협을 느낀 종교 지도자들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거짓 증인들을 동원하고 절차를 무시한 재판을 거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릴지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의 죄는 결코 가볍지 않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그 이후

종교개혁 오늘날 교회

이천여 년이 흘렀다. 그사이 교회는 수많은 이교의 교리를 받아들였고, 마르틴 루터는 이에 반기를 들며 종교개혁을 선포했다. 잃어버렸던 진리는 다시 회복되는 듯했다.

예수님을 믿던 소수의 신앙은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퍼졌다. 70억 인류 중 약 30억 명이 기독교를 믿는다. 특히 한국에는 2012년 기준 7만8천여 개의 교회가 세워져 있다. 편의점보다 교회가 더 많다. 한국의 종교 지도자들은 어떤 신앙을 하고 있을까.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과연 성공한 것일까.

그들과 똑같은 것을 지키려 하는 자들

목회 세습 논란

몇 해 전, 대한예수교장로회와 기독교대한감리회 등 주요 교단들은 ‘세습금지법’을 담은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세습금지법은 이름 그대로 교회를 아들이나 사위 등 가까운 이들에게 물려주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교회를 세습한다는 말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부끄럽게도 교회 세습은 한국 기독교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받아왔다. 대형 교회를 이끄는 대부분의 전임 목사들은 아들이나 사위 등 가까운 이들에게 교회를 세습하는 것을 관례처럼 여겨왔다. 전임 목사들은 “원로들과의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고, 성도들도 후임자를 잘 알기에 분쟁의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좋은 제도라면 법까지 만들어 금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는 성도들과 교회를 마치 사유 재산처럼 취급하는 행위다. 게다가 정작 성도들의 의견은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후임 목사 청빙은 투표를 통해 결정하도록 되어 있지만 이미 후임자를 내정하고 형식적인 투표만 치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습금지법이 버젓이 존재함에도 여전히 수많은 교회들은 조항의 허점을 이용해 세습을 진행하고 있다. 세습의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물려주는 격세세습, 허수아비 목사를 임시로 청빙했다가 그 다음에 자녀를 목사로 세우는 위장세습, 비슷한 규모의 두 개 교회가 아들 목사의 목회 장소를 교환하는 교차세습, 여러 개 교회가 힘을 합쳐 교차세습을 진행하는 다자간세습···.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세습 편법이 많다.

목회 세습, 왜 포기하지 못하나

목회 세습이 계속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한 신학대 교수는 “교회 안의 기득권 세력들이 주도권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세습이 이루어지면 담임목사뿐 아니라 기득권 그룹까지 살아남게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또 다른 교수는 포럼을 통해 “교회세습은 단지 담임목사직만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물적 재산, 즉 교회 자본을 대물림하는 행위로 교회 사유화의 잘못된 관행이요 악습”이라고 비판했다.

어떻게든 대형 교회를 자손에게 물려주려 하는 모습에서 이천 년 전 종교 지도자들이 겹쳐 보이는 것은 왜일까. 오늘날의 종교 지도자들이 지키려 하는 것은 이천 년 전의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이쯤에서 예수님의 종교개혁을 다시 떠올려 보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신다면 어떨까. 노끈으로 만든 채찍을 다시 휘두르시며 세습을 추진하는 목사들을 내쫓으실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의 것인가

종교개혁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의 것"이라고 교훈하셨다 [Freedom Studio / Shutterstock.com]

재미있게도 이천 년 전, 예수님께 천국을 청탁(?)했던 사례가 있다. 열두 제자의 일원이었던 야고보와 요한의 이야기다. 두 사람은 예수님께 각자 하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나머지 열 명의 제자들이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술렁이는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어떤 자의 것인지 교훈하셨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가복음 10:43~44)

천국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신앙과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허락된 공간이다(누가복음 18:16~17). 사도들은 이러한 가르침을 계승하여 초대교회를 세웠다. 죽기까지 충성하며 교회를 세웠음에도 사도들은 누군가의 업적으로 교회가 세워졌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교회와 성도들이 자신들의 소유라고는 털끝만큼도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고린도전서 3:4~7)

종교 지도자는 신앙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자들이다. 그들의 행보에 따라 신앙인들은 구원의 길로도, 멸망의 길로도 향할 수 있기에 그 책임이 막중하다. 하지만 그들은 교회를 자신의 사유 재산처럼 여기며,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후대에게 물려주려 한다. 종교개혁을 부르짖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은밀하게 세습을 진행하는 모순적인 행태를 이천 년 전의 사도들이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정말로 지켜야 할 것

종교개혁 미래

공교롭게도 2017년 말, 목회 세습 논란으로 꾸준히 지탄받아오던 한 대형 교회는 여러 비난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세습을 성공시켰다. 기독교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점점 싸늘해지고 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느라 혈안이 된 모습들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가 정말로 지켜야 할 것은 기득권이 아니라 구원의 소망이며 빛과 소금의 사명이다. 초대교회의 신앙으로 돌아가자며 종교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교계 안팎에서 점점 거세지고 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교회의 주인이 오직 하나님이시라고 굳게 믿었다. 교회는 어느 목사의 것도 아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이를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0:28)

댓글
  1. 비타1004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교회로 불러주셔서 구원의 소망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것은 세상의 것이 아닌 구원과 빛과 소금의 사명입니다.

  2. 그린스타

    자신들이 정해 놓은 세습금지법을 보란 듯 어기는 기성교회에 소속된 신도들이
    참 불쌍합니다.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