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예수님의 비유는 무심코 넘겨도 될 이야기가 아니다. 그 속에는 ‘감추인 보화’처럼 가치를 매길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강력한 진리가 담겨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신앙인이라면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이유다.
2014년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에 사는 중년 부부가 강아지와 함께 집 마당을 산책하던 도중, 땅 위로 튀어나온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낡은 깡통이었다. 깡통을 파내자 밑에서 더 많은 깡통들이 나왔다. 놀랍게도 깡통 안에는 1,427개의 금화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1847년부터 1894년 사이,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기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주조된 희귀한 동전들이었다. 그 가치는 무려 1,000만 달러(약 107억 3100만 원)를 상회했다. 이 동전들은 유통되지 않아 매우 좋은 상태를 유지했고, 몇 개는 너무 희귀하여 개당 100만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한 화폐 감정사는 “이 같은 보물을 다룰 기회는 흔치 않다. 부부는 무지개 끝에 있는 금단지를 발견한 것과 같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금화 발견한 美 중년 부부, 산책 한 번에 107억 덜컥!’ 참고).
땅에 보화를 감추는 일은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이스라엘은 전쟁의 땅이었다. 전투와 포위, 점령과 착취, 수탈하는 정복의 역사로 가득했다. 때문에 부유한 유대인들은 전쟁이 시작될 조짐이 보이면 집에 있는 귀한 물건이나 보석, 돈을 깊숙한 땅속에 묻었다. 이것이 당시 재산을 지키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은 전쟁의 불확실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금과 은과 귀한 가구들을 땅속에 파묻어 두었다”고 기록했다.
그런데 보물을 땅에 숨겨둔 사람이 전쟁이나 불의의 사고로 죽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경우 감추인 보화는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게 된다.
예수께서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문화를 언급하시며 다음과 같은 비유를 말씀하셨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마태복음 13:44)
비유 속에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밭주인에게 고용되어 밭을 경작하다가 뜻밖에 땅 속에 묻힌 엄청난 보화를 발견했다. 그는 그것을 다시 묻어 두고 돌아가서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 한편 밭주인은 그곳에 보화가 감추어 있는지 몰랐다. 자기가 숨겨둔 보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화가 숨겨진 밭을 아무 생각 없이 팔았다.
비유에 등장하는 일꾼의 관심은 오직 밭을 향해 있었다. 밭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밭에 감추인 귀한 보화를 발견한 후 너무도 기쁘고 황홀하여, 그것을 얻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포기했다.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가치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비유 속 인물처럼, 2천 년 전 세상 속에 감추인 천국의 보화 곧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가룟 유다와 사도 바울은 매우 대조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가룟 유다 – 가치를 측정하지 못한 자
가룟 유다(Judas Iscariot). 그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한 명으로, 처음에는 예수에 대한 믿음과 열정이 있었던 자다. 다른 제자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다(누가복음 9:1~2). 그리고 금전 관리도 맡았다. 어느 단체든지 금전 관리는 깊은 신뢰를 얻은 사람들이 수행한다. 그는 세리 출신의 마태가 있었음에도 초대교회의 재무를 관리했을 정도로 신임을 받았고, 수리에 밝고 유능했다.
유다는 예수님과 3년의 공생애를 함께 하며 예수께서 이루시는 복음의 기적을 목도했다. 그는 예수님과 한 공간에서 예배를 드렸고,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 또 밭에 감추인 보화를 산 사람처럼, 세상의 일시적인 보화는 천국이라는 보화 앞에서 기꺼이 버릴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가까이에서 들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가룟 유다는 천국이라는 보물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천국의 대열에서 탈락하여 저주받았다(마가복음 14:21, 사도행전 1:18). 무엇이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을까?
가룟 유다가 ··· ‘왜 이 향유를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소?’ 하였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는 돈궤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 있는 돈을 자주 훔쳐내는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인의성경 요한복음 12:4~6)
예수께서 베다니에 있는 문둥병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였다. 마리아가 아주 값진 향유 한 병을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이때 유다는 매우 분개하며 마리아를 호되게 꾸짖고 책망했다(마가복음 14:4~5). 그는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를 구제해야 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은 그 향유가 노동자의 약 일 년치 품삯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음을 알고 이를 횡령하여 개인의 이익을 취하려고 했다.
돈을 탐하는 마음은 그에게 치명적인 올무가 되었다. 이후 유다는 예수님을 시기하고 비방하는 종교 기득권 세력, 곧 대제사장들에게 달려가 “내가 예수를 넘겨주면 그 값으로 얼마를 주겠소?”라고 말하며 돈을 요구했다. 그리고 스승을 파는 조건으로 은화 30냥을 받았다. 스승의 목숨 값으로 받은 30냥은 당시 이스라엘에서 노예를 거래하는 금액에 불과했다(출애굽기 21:32).
예수께서는 유다가 배반할 것을 아셨다. 성력 1월 14일 저녁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은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안락과 영리를 우선순위로 여긴 유다는 예수님께서 3년 동안 보여주신 교훈과 가르침을 귀한 보화로 여기기는커녕 예수님을 배반했다.
오늘날 심리학자들은 유다가 배신한 이유를 물욕, 탐욕, 명예욕, 이기심의 결합으로 꼽는다. 사람이 이런 것들을 최고의 가치로 둘 때 타인에 대한 믿음과 의리, 신념을 깨뜨린다는 것이다. 반면 가치를 제대로 측정하여 충성의 길을 택한 이도 존재했다.
사도 바울 – 가치를 측정한 자
만일 어떤 사람이 세속적인 것을 가지고 자랑하려 든다면 나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이 더 많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났으며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히브리 사람 중의 히브리 사람입니다. 나는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파 사람이며 ···
(공동번역 빌립보서 3:4~5)
사도 바울(Apostle Paul)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학문과 철학이 발달한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나 8일만에 할례를 받았다. 그는 초대 왕 사울을 배출한 왕족 출신의 베냐민 지파이고, 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자였다. 또한 바리새인으로 예루살렘에서 우수한 훈련을 받았다. 최고의 랍비인 가말리엘을 스승으로 둔 문하생이었다.
바울 역시 자신의 배경과 학문적 지식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사도행전 22:3). 그런데 그는 자신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보화들을 ‘배설물’이라고 표현했다.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 해로 여김은 ···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 모든 것을 ···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빌립보서 3:7~9)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유대 사회에서 독보적 권력을 자랑하던 바리새인이라는 직함, 지위, 부 등 모든 것을 버렸다. 과거에 소중하게 여긴 그것들이 ‘그리스도’라는 고귀한 가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와 새 언약 복음을 전파하는데 집중했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는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돌에 맞고, 여러 번 감옥에 갇히고, 수없이 죽을 고비를 겪었다’고 전했다(고린도후서 11:23~29).
당시 기득권층의 바리새인으로 있었다면 이 같은 고난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고난을 택했다. 고난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킬 만큼 귀한 보물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상에 감추인 그리스도 곧 천국의 보화였다(로마서 11:33). 바울은 천국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발견했기에, 그동안 붙잡고 있었던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길 수 있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에바브로디도 등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의 믿음이 이와 같았다.
에서와 야곱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구약의 인물 가운데 에서(Esau)와 야곱(Jacob)을 만날 수 있다. 둘은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정반대의 인물로 조명된다. 그들의 운명을 가른 것은 ‘장자권’이었다. 장자권은 숨은 보화와 같았다. 가치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값진 것이었지만,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숨은 그림에 불과했다. 에서가 동생 야곱에게 스스럼없이 장자권을 판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에서의 관심은 당장 자신의 주린 배를 채우는데 있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실익에 더 큰 가치를 두었던 그의 눈에는 장자권보다 팥죽 한 그릇이 더 가치 있게 보였다. 또 장자권을 판다고 해서 당장 손해 보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장자권을 판 에서의 행동은 장자의 권리를 가볍게 여기는 사고방식, 곧 그의 가치관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창세기 25:29~34).
반면 야곱은 달랐다. 장자권이 당장 눈에 보이는 실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장자권 안에 ‘감추인 가치’를 보았다. 그것은 단순히 아버지 이삭의 재산을 유업으로 받는 것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유업과 관련이 있었다. 때문에 그는 장자권을 늘 갈망했고, 마침 이를 가치 없게 여긴 형 에서에게서 샀다. 그리고 끝내 형 대신 장자의 축복을 받았다.
에서와 야곱의 기록은 단순히 장자권을 팔고 샀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룟 유다와 사도 바울의 기록도 비단 물질을 탐하고 버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치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가치관에 따라서 보는 것이 달라지고, 행동하는 것이 달라지고, 관점이 달라지고, 목표가 달라진다. 그리고 결과도 달라진다.
이제 자신에게 질문해보자. 나는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는가.
<참고자료>
‘금화 발견한 美 중년 부부, 산책 한 번에 107억 ‘덜컥!’’, 조선일보, 2014. 2. 27.
무엇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생각도, 행동도 확연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깨달음의 글 감사해요.
처음 진리를 접했을때, 그때의 감동과 마음을 끝까지 유지하는게 중요한거 같아요~
좋은교훈입니다
나 자신도 사도바울처럼 가치있는것을 잡기위해 배설물로 버려야할것을 생각하고 과감히 버려야겠습니다.
잘 읽었어요~ 처음 진리를 듣고 신앙생활을 했을때의 첫마음을 되새기고 갑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갖는 사람은, 가치를 아는 사람이네요~
무엇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상이한 결과를 맞이한 성경 속 인물들의 기록을 경계로 삼겠습니다. 적어도 유다와 같은 자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는 많이 들었지만 그 배경은 처음 듣네요~~ 그리고 어느 시대든 가치를 깨닫고 행동으로 옮긴 자들이 결국 구원을 얻었네요~ 저도 바울과 야곱과 같은 믿음이 되고싶어요~
가룟유다는 보화 중의 보화이신 예수님 곁에 있던 자였습니다. 에서는 태어날때부터 장자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두사람은 엄청난 가치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를 가치없게 여겼네요. ‘가치를 모르는자 소유할 자격없다’는 설교가 떠오르네요~
가만히, 내게 허락된 것들의 가치를 측정해봤어요..
성령과 신부를 만난 것, 그분의 음성을 들을수 있는 것, 그분의 교훈을 받고 있는 것, 새언약의 예배를 지키고 있는 것. 생각해보니 제가 발견한 것은 엄청난 보화였어요.. 이를 가치있게 여기며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