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레의 시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 고난 속에 피어난 숭고한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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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의 시민’ 이야기는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서 일어난 백년전쟁 중 프랑스의 항구도시 ‘칼레’에서 전해지는 일화로, 칼레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여섯 명의 시민에 대한 영웅담이다. 이 이야기는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그중에서도 프랑스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조각상 ‘칼레의 시민’은 그들의 영웅적 행동 뒤에 감춰진 고뇌와 고통을 생동감 있게 묘사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칼레의 시민’ 이야기

‘칼레의 시민’ 일화는 14세기로 거슬러간다. 당시 프랑스와 영국은 영토 분쟁으로 백년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칼레의 시민’의 배경인 프랑스 칼레시는 영국의 도버 해협과 맞닿아 있어 전쟁 초기부터 영국군의 공격을 받았다. 칼레 시민들은 끈질기게 저항했으나 식량이 고갈되어 포위된 지 1년 만에 항복을 선언했다.

칼레시의 항복 사절단은 영국 국왕 에드워드 3세(Edward Ⅲ)에게 찾아가 자비를 구했다. 에드워드 3세는 항복을 받아들이고 칼레 시민들을 살려주는 대신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그동안 영국에 반항해온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칼레 시민들을 대신해 처형당할 시민 대표 6명을 데려오라.”

이 소식을 들은 칼레 시민들은 두려움과 혼란에 빠졌다. 다수의 시민을 살리기 위해서 그들 중 누군가는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도대체 누가 우리를 대신해 죽는단 말인가?’

모두가 공포에 떨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나섰다.

“내가 그 여섯 명 중 한 사람이 되겠소.”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였던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aint Pierre)였다. 그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은 지역 유지들이 하나둘 죽음을 자처하고 나섰다. 모두 상인, 시장, 법률가 등 부유한 귀족들이었다.

이튿날, 여섯 명의 시민 대표는 칼레시를 구하기 위해 목에 밧줄을 걸고 처형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그들이 마지막으로 오를 교수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에드워드 3세가 처형을 명하려는 순간, 왕비 필리파 에노(Philippa of Hainault)가 명령을 취소할 것을 요청했다.

“스스로를 희생해 시민을 구하려는 훌륭한 지도자들을 처형한다면, 영원히 칼레 시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칼레를 점령한 가치가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저들을 살려주면 칼레 시민들에게 훌륭한 국왕으로 존경받고, 그들의 마음을 얻어 훨씬 통치하기 수월하실 것입니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왕비가 태아에게 해가 될 것을 우려하여 에드워드 3세를 설득한 것이다. 에드워드 3세는 왕비의 말에 귀를 기울여 시민 대표들을 풀어주었다. 여섯 명의 희생 정신으로 칼레 시민들은 모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칼레의 시민 대표를 살려줄 것을 요청하는 왕비 필리파 에노

이 일화는 동시대 프랑스의 작가 장 프루아사르(Jean Froissart)에 의해 기록되었다. 학자들은 ‘칼레의 시민’이 항복을 위해 형식적으로 행했던 의례가 다소 과장되어 신화처럼 전해지고 있다고 보고 있으나, 비록 과장되었다 할지라도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표본을 보여주는 교훈적인 이야기임은 틀림이 없다. ‘칼레의 시민’은 다양한 작가와 화가에 의해 여러 작품으로 만들어졌으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 영웅들의 두려움과 고통을 조각하다

칼레의 시민 사건으로부터 약 500년이 지난 1884년,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은 칼레시로부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뻔했던 6명의 시민 대표를 기념할 조각상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들의 영웅담에 깊은 감명을 받은 로댕은 곧바로 작품 제작에 돌입했다. 정성스런 작업 끝에 1895년, 로댕은 칼레의 시민 동상을 칼레시에 헌정했다.

칼레의 시민들은 로댕의 조각상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 조각상 속 인물들의 모습이 영웅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떨군 채 손으로 머리를 감싼 모습, 굳게 다문 입과 어두운 표정, 체념한 듯한 몸짓,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등 죽음 앞에서 한없이 고통스러워하고 번뇌하는 모습은 영웅보다 오히려 죄인에 가까워 보였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 Thaddeus Zajdowicz,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CC0 1.0

시민들은 이 조각상을 최대한 영웅적인 모습으로 다시 제작해달라고 요청했다. 로댕은 단호히 거절했다. 심지어 조각상을 하늘 높이 세우는 것이 아닌, 지면과 최대한 가깝게 설치할 것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시민들은 비난했고, 결국 칼레 시청에 설치할 예정이었던 ‘칼레의 시민’ 조각상은 한적한 바닷가의 공원에 세워졌다.

로댕은 왜 여섯 명의 인물을 나약하고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했을까. 로댕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영웅적인 행동 뒤에 감춰진 희생이었다. 조각상에 영웅적인 기개와 호방한 모습만 표현했다면 여섯 시민 대표의 위상은 드러났을지 모르나,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도 죽음을 선택한 그들의 진실한 용기와 희생정신은 가려지고 말았을 것이다.

칼레의 시민 이야기가 더욱 감명 깊은 것은 그들의 희생이 두려움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 번뇌를 느꼈으나 그럼에도 다른 이들을 위해 희생을 선택했다. 그래서 여섯 시민의 희생이 더욱 진실되고 숭고한 것이다. 로댕은 이 점을 표현하고 싶었다.

인적이 드문 공원에 세워졌던 칼레의 시민상은 훗날 재평가되어 칼레 시청 앞으로 옮겨졌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 세워진 칼레의 시민상은 로댕의 의도대로 대부분 정원이나 마당 바닥에 전시되어 있다. 감상자와 눈높이를 나란히 한 덕분에, 수백 년 전 여섯 명의 시민대표 한 사람 한 사람의 심경과 고뇌, 진정한 희생 정신을 생생하고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참고로 로댕의 조각상 ‘칼레의 시민’은 총 12점의 판본이 있는데, 그중 12번째 작품은 대한민국에 있다. 서울 로댕 갤러리에 상설 전시되고 있었으나, 로댕 갤러리가 문을 닫으면서 현재는 관람이 불가한 상태다.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결심과 희생

칼레 시민들을 대신해 죽음을 자원한 여섯 시민의 일화는 온 인류의 죗값을 대신해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한다. 칼레 시민 대표의 영웅적인 행보 뒤에는 죽음의 공포와 번뇌가 있었다. 그리스도의 고결한 희생도 결코 아무런 고통과 번뇌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를 살리기 위한 그리스도의 처절한 고통이 주제였으며, 이는 그리스도의 형용할 수 없는 고뇌와 굳건한 결심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기 전날 밤, 예수님께서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열두 제자와 함께 유언과도 같은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셨다(마태복음 26:17~19, 26~28). 유월절 성만찬 이후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신 예수님은 평소 자주 찾던 그 기도처에서, 곧 겪으실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심히 고민하고 슬퍼하셨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마태복음 26:36~38)

그리고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셨다. 예수님의 기도는 땀이 핏방울같이 될 정도로 간절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

(누가복음 22:44)

땀이 핏방울같이 되는 이 현상은 의학적으로 보면 ‘혈한증(血汗症)’이다. 사람이 극한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때 드물게 일어나는 현상으로, 땀샘에 있는 모세혈관이 터지면서 땀샘으로 소량의 피가 유입되고, 땀을 흘릴 때 피가 섞여 나오는 증상이다. 예수님의 심정은 이처럼 절박했다. 십자가 고난을 앞둔 예수님의 고뇌는 그 기도 내용 속에도 절실히 드러난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 세 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웠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마태복음 26:39~45)

괴로움 속에 죽음과 고난의 잔이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은 곧이어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다고 하셨다. 십자가의 극심하고 처절한 고통과 희생을 결행하기 위한 결심을 마치셨던 것이다. 고뇌의 기도가 마쳐진 뒤 대제사장 무리에게 체포되신 예수님께서는 순순히 끌려가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 구약 선지자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53:7)

이처럼 그리스도의 고결한 희생 뒤에는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자녀를 위해 그 길을 걷기로 하신 그리스도의 결심이 있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실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렸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메시아 곧 하나님이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모습은 사람들이 기대하던 위엄 중에 계시는 전지전능한 구원자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하룻밤 유숙하는 행인 같다”, “놀라 벙벙하는 자 같다”, “구원치 못하는 용사 같다”,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다”,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 구약 선지자들이 묘사한, 장차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의 모습은 사람들이 고대하던 메시아상과 큰 간극이 있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곤란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행인같이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놀라 벙벙하는 자 같으시며 구원치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예레미야 14:8~9)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이사야 53:2)

하나님께서는 영광 중에 오실 수 있으며, 인간의 고통과 괴로움을 느끼지 않을 능력도 있으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낮추시어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죽지 않는 하나님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심은 우리가 당해야 할 사망죄를 대신 치르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결정 뒤에도 우리는 영원히 알지 못할, 하나님의 위대하고 결연한 결심이 있었을 것이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히브리서 2:14~15)

그렇게 사람 되어 오신 하나님, 그리스도는 인간의 고통과 아픔, 괴로움을 전부 겪으셨다. 복음을 전파하시며 배고픔과 슬픔을, 배신당하는 아픔과 고난 앞에서의 두려움을 그리고 채찍질의 고통까지 말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5~8)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사람의 모습으로 낮추어 우리와 눈높이를 같이해주셨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교감하며 그 희생과 사랑을 가슴 깊이 느끼고, 그의 고난과 괴로움을 실감할 수 있다.

칼레 여섯 시민 대표가 시민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짊어졌던 고통의 무게는 매우 막중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인류를 살리시기 위해 세상 모든 사람의 죗값을 홀로 치르셔야 했다. 함께해주는 이 없이, 당신을 향한 핍박과 멸시만 가득한 세상에서 오롯이 짊어져야 했던 고난과 괴로움, 외로움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럼에도 그 짐을 짊어지신 것은 고통의 무게보다 우리를 향한 사랑의 무게가 더 컸기 때문이다.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한복음 15:12~14)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모습은 믿지 않는 이들에게 핍박의 이유가 되었으나, 믿는 자들에게는 사무치는 감사와 회개의 이유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심은 사실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가장 특별하고도 직접적인 사랑 표현이다.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신 이유>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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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칼레의 시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 고난 속에 피어난 숭고한 희생”에 대한 3개 응답

  1. 칼레 댓글:

    인류가 감당할 수 없던 죄의 짐을 모두
    홀로 짊어지시고 포기하지 않아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립니다

  2. 하늘 사랑으로 댓글:

    처절한 고통과 죽음이 기다리는 것을 아시지만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임하신 하나님의 숭고하신 희생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3. 하늘로 날아가는 뀰 댓글:

    하나님의 희생은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입고 오셔서 고통과 번뇌를 견디셨기 때문에 더 숭고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 희생 속에 담긴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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