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 유리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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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은 430년 만에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이집트에서 가나안까지는 약 200km. 이는 서울과 대구 정도의 거리로, 열흘 남짓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살아야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데스 바네아 사건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이후 2년 만에 이미 가나안과 인접한 바란 광야 가데스 바네아(Kadesh Barnea)에 도착했다.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40일간 정탐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곳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간 광야에서 유리하게 되었다.

당시 일어났던 사건은 아래와 같다.

출애굽 이후 2년 만에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하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저하지 말고 가나안을 점령하자고 말했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여러분에게 주셨으니 여러분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은 올라가서 그 땅을 점령하십시오.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대인의성경 신명기 1:21)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정복을 위해 미리 땅을 정탐하자고 건의했다. 백성의 의견을 받아들인 모세는 각 지파에서 열두 명의 정탐꾼을 선발하여 가나안으로 파견했다.

“그러나 여러분이 먼저 사람을 그 땅에 보내 어느 길로 가야 하며 어느 성을 먼저 점령해야 할지 살피고 와서 우리에게 보고하게 합시다 하기에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모두 12명을 선발하였습니다.”

(현대인의성경 신명기 1:22)

열두 정탐꾼은 40일 동안 가나안의 최남단 신 광야부터 최북단 하맛과 르홉까지 가나안 전 지역을 탐지했다. 중간 지점인 헤브론 근처 에스골 골짜기에서는 탐스러운 과일도 땄다.

하나님 말씀대로 가나안은 최고의 경작지였다. 정탐꾼들은 두 사람이 어깨에 메고 들어야 할 만큼 커다란 포도송이를 보여주었다. 가나안이 매우 비옥하고 기름진 땅임을 증명해주는 것이었다.

James Tissot 作 가나안의 포도송이

그러나 그들이 정복해야 할 가나안 곳곳에는 신장이 장대한 거인족들이 살고 있었다. 가나안 남쪽에는 전쟁을 좋아하는 아말렉 족속이, 산간에는 헷, 여부스, 아모리 족속이, 해변과 요단 계곡에는 가나안 족속이 거주했다.

정탐꾼 중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백성들을 안심시켰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니 충분히 그들을 이길 수 있다며, 어서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점령하자고 말했다. 그런데 다른 10명의 정탐꾼들이 반박했다.

“··· 그 땅에는 힘센 장사들이 수두룩하고 사람들의 키가 모두 컸으며 게다가 우리는 네피림의 후손인 거인 아낙 자손들도 거기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도 우리 자신들이 메뚜기처럼 느껴졌는데 그들의 눈에도 우리가 그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현대인의성경 민수기 13:32~33)

‘거대한 몸집의 족속들을 밀어내고 과연 우리가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 정탐꾼들의 의견이 갈렸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이길 수 있다고 외쳤지만, 나머지 열 명의 정탐꾼은 현실에 사로잡혀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날 열 명의 정탐꾼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밤새 통곡하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우리가 이집트와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여호와가 우리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칼날에 죽게 하려는가? 우리 아내와 자식들이 다 잡혀갈 바에야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현대인의성경 민수기 14:2~5)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통탄했다.

“우리가 탐지한 땅은 아주 좋은 땅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좋게 여기신다면 비옥한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 그 땅 사람들은 우리 밥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보호자는 떠났고 여호와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니 조금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현대인의성경 민수기 14:7~9)

그러나 백성들은 오히려 갈렙과 여호수아를 돌로 쳐 죽이려고 위협했다. 그때,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장막 앞에 나타났다. 미련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크게 분노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20세 이상의 백성은 그들이 말한 대로 모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가나안을 정탐한 40일을 연수로 계산하여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너희는 이 광야에서 쓰러져 죽을 것이다. 너희가 나에게 불평하였으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제외하고 나를 원망한 20세 이상의 사람들은 내가 약속한 땅에 하나도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그리고 나를 불신한 너희 죄 때문에 너희 자녀들은 너희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죽을 때까지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할 것이다. 너희는 그 땅을 탐지하는 데 소요된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40년 동안 너희 죄의 대가를 받을 것이다.”

(현대인의성경 민수기 14:29, 33~34)

이날 이스라엘 백성이 내뱉은 불신과 원망의 말은 가나안 문턱에서 뒤돌아, 40년간 광야 생활을 해야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몹시 사랑하셨다. 그들의 신음과 기도를 듣고, 백성들을 학대와 고된 노역의 땅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셨다. 그도 모자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까지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2년 만에 마주한 가나안 앞에서 자신들을 인도한 하나님을 되레 원망하고 비방했다. 그들은 어쩌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을까.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기까지 2년간 있었던 여정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자.

하나님이 우리를 잊은 것 같다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부터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분명 자신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킨 하나님의 권능을 두 눈으로 보았고, 찬양을 올렸다. 그러나 잠깐일 줄 알았던 험준한 광야 길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어느새 백성의 마음에는 가나안에 대한 소망보다 당장의 현실이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도착지 가나안은 보이지 않고, 끝없는 사막을 걷자니 그야말로 모든 것이 ‘시험거리’였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 희미해지기 시작한 그들은 이제 사소한 어려움도 인내할 수 없었다.

홍해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 홍해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이집트 왕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킨 것을 후회하여, 그들을 다시 노예로 삼으려고 군대를 이끌고 무섭게 추격해왔다.

앞은 홍해가 가로막고 뒤는 이집트 군대가 쫓아오는 일촉즉발의 상황, 이스라엘 백성은 곧바로 하나님을 원망했다.

“··· 이집트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 광야로 끌어내어 죽이려 합니까? 무엇 때문에 당신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이 꼴을 당하게 합니까? 우리가 이집트에서 당신에게 이집트 사람을 섬길 수 있도록 내버려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집트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는 낫겠습니다”

(현대인의성경 출애굽기 14:11~12)

이때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 백성들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셨다. 장정만 60만 명. 그에 딸린 식솔들까지 합친다면 어마어마한 숫자였을 것이다. 그 거대한 무리가 홍해를 건너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으로 이집트 군대가 있는 쪽을 어둡게 하셨다. 그 때문에 이집트 군대는 이스라엘 진영에 접근하지 못했고, 이스라엘 백성은 무사히 홍해를 건널 수 있었다. 갈라졌던 물의 장벽이 이집트 군대를 삼켜버리는 놀라운 광경도 목도했다(출애굽기 15:1~8).

수르 광야에서

홍해를 건넌 후, 백성은 수르(Shur) 광야에 들어갔다. 거기서 한 샘물을 발견하여 물을 마셨는데, 맛이 매우 써 도저히 마실 수 없었다.

“백성이 모세를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출애굽기 15:24)

쓴 물을 마셔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백성들은 바로 불평을 쏟아냈다. 전무후무한 기적으로 홍해를 건넌 지 겨우 사흘이 지난 후였다. 하나님께서는 쓴 물을 단 물로 바꾸는 기적을 베풀어주셨다(출애굽기 15:25).

신 광야에서

James Tissot 作 만나를 거두는 백성

신(Sin) 광야에 이른 것은 이집트에서 해방된 지 한 달이 지났을 때다. 백성들은 또 모세에게 불평하며 항의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출애굽기 16:3)

백성들은 식량이 떨어지자마자 낙담하고 불평했다. 그들의 불평은 모세를 향했지만 실상 하나님께 한 것이었다(출애굽기 16:7~8, 11~12). 홍해를 가르신 기적, 쓴 물을 단 물로 바꿔주신 기적을 상기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구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식량을 풍족히 내려주셨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음식은 마치 꿀 섞은 과자 같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만나’라고 불렀다(출애굽기 16:31). 덕분에 백성은 만나가 처음 내리던 날부터 가나안 땅 강변에 진을 칠 때까지 40년 동안 단 하루도 끼니를 거르지 않았다(출애굽기 16:35). 생명이 살 수 없는 땅 광야에서 굶어서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르비딤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Rephidim)에 진을 쳤을 때다. 이곳에는 물이 없었다. 이제 백성들은 습관처럼 원망했다.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 하겠나이다 ···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출애굽기 17:3~7)

이번에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도 모자라, 돌로 모세의 목숨까지 위협하려 하였다. 광야에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백성의 인내는 바닥을 드러냈고, 의심과 원망의 수위도 점점 높아졌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말라붙은 땅의 바위에서 엄청난 양의 물을 내셨다(출애굽기 17:5~6, 시편 105:39~41).

시내 광야에서

시내(Sinai) 광야에 이르러, 하나님께서는 백성들 앞에 우뢰(우레)와 나팔소리로 강림하여 십계명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십계명을 기록한 돌판을 주시고자 모세를 시내산 꼭대기로 부르셨다. 그러나 모세가 오랫동안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백성들은 아론을 찾아갔다.

백성은, 모세가 산에서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으니, 아론에게로 몰려가서 말하였다. “일어나서,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올라오게 한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론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의 아내와 아들 딸들이 귀에 달고 있는 금고리들을 빼서, 나에게 가져 오시오.”

(새번역 출애굽기 32:1~2)

백성이 아론에게 한 요청은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총회 앞에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십계명을 반포하신 지 두 달도 지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기적과 그들을 위한 당부는 이렇듯 ‘상황’이라는 시험 앞에서 또 한번 잊혀졌다.

다베라,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 광야에서 다베라(Taberah)에 이르렀다. 그들은 길로 인해 고생스럽다며 악한 말을 쏟아냈다(민수기 11:1~3). 이후 다베라를 떠나 기브롯 핫다아와(Kibroth Hattaavah)에 이르렀을 때는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섞여 살던 이방인 족속과 함께 하나님을 원망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줄까? 이집트에서 생선을 공짜로 먹던 기억이 생생한데, 그밖에도 오이, 수박, 부추, 파, 마늘이 눈에 선한데, 이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이 만나밖에 없으니, 입맛마저 떨어졌다’

(새번역 민수기 11:4~6)

백성들은 이제 척박한 광야에서 자신들의 생명을 유지해주던 유일한 식량, 만나에도 염증을 느끼고 불평했다. 가시 돋친 말들을 뱉으며, 입맛대로 음식을 요구했다(시편 78:17~20). 하나님께서는 바람을 일으켜 진중에 메추라기를 내려 보내셨다. 백성들은 배부를 때까지 실컷 고기를 먹었다(민수기 11:31~32, 시편 78:26~29).

가데스 바네아 도착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손길로 가나안 입구, 가데스 바네아(Kadesh Barnea)에 도착했다. 열두 정탐꾼을 통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이라는 것도 확인했다(민수기 13:27). 이제 하나님을 믿고 들어가 땅을 점령하기만 하면 됐다.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기까지 2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양식 없고 물 없는 광야에서 놀라운 기적으로 그들을 보호하시며, 그들과 함께하심을 증명해 주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현실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하는 습관을 바꾸지 못했다.

이것이 여호수아와 갈렙, 광야 2세대를 제외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서도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유리하다 생을 마감한 이유다(민수기 14:29~35).

하나님은 그들을 잊지 않으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작은 시험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잊었다며 큰 소리로 울부짖고 원망, 불평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항상 함께하셨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다. 씨를 뿌릴 수도, 추수할 수도 없다. 사람이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집, 식량, 옷을 구할 수 없다. 이런 척박한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장비조차 갖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버젓이 광야에서 생존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가사의한 생존 이면에는 ‘하나님’이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농사 짓지 않아도 먹고 마실 것을 채워주셨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뜨거운 햇빛과 매서운 추위를 막아주셨다. 험난한 사막에서 백성의 의복은 해지지 않았으며, 발도 부르트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을 원망할지라도 그 요구를 모두 들어주셨다. 이집트 군대가 추격해오는 사면초가에 빠졌을 때는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보여주셨으며, 물이 없다고 원망할 때는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셨다. 식량이 떨어졌다고 불평하자 40년 동안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다. 고기를 먹고 싶어할 때는 메추라기를 내리셨고,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싶다는 요구에 그 원대로 하도록 들어주셨다.

하나님은 늘 그들의 손을 잡고 광야를 함께 걷고 계셨다. 단 한시도 잊지 않고, 백성들이 광야 너머 아름다운 가나안에 도착할 수 있도록 온 관심을 쏟으셨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손길과 사랑을 이스라엘 백성은 수시로 망각했다. 어려운 여건에 마주하면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며 거역하여 하나님을 슬프게 했다.

“그들이 광야에서 그를 거역하며 그를 슬프시게 한 적이 몇 번인가! 그들이 거듭거듭 하나님을 시험하여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을 괴롭게 하였다. 그들은 그의 능력을 기억하지 않았으며 자기들을 원수들에게서 구해주신 날도 생각하지 않았다.”

(현대인의성경 시편 78:40~42)

“우리는 그들처럼 불평하지 맙시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옛날 우리 조상들이 광야에서 겪은 일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모세 때에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의 인도를 받아 홍해를 건넜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 대부분을 기쁘게 여기지 않으셨으므로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습니다. ··· 이런 일은 우리에게 거울이 되어 우리도 그들처럼 악을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 우리는 그들처럼 시험하지 맙시다. ··· 우리는 그들처럼 불평하지 맙시다. 그들이 당한 이런일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었으며 세상 끝날을 눈앞에 둔 우리에게 하나의 경고로서 기록되었습니다.”

(현대인의성경 고린도전서 10:1~11)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가나안을 소망한다고 하면서도,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입맛과 생각에 맞지 않으면 바로 하나님께 등 돌리며, 가나안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지금 믿음의 광야를 걷고 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에 도착하기까지, 삶의 길에서 원치 않는 어려움과 상황을 마주할 때도 있다. 그러나 광야의 모든 여정에서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의 손을 잡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광야는 하나님과 손잡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일뿐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신 것은 그들을 광야에서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다.

단언컨대 믿음의 광야 길은 하나님과 교감하며,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축복의 여정이다. 오늘날 우리가 광야의 의미를 올바르게 깨닫는다면, 이 여정에서 겪는 불편함과 괴로움이 우리의 천국 소망을 꺾을 수 없을 것이다.

“···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9:15)

이스라엘 백성도 이러한 광야의 의미를 조금 빨리 깨달았더라면, 그 결말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가데스 바네아와 광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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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9

19 responses to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 유리한 이유”

  1. 가을입구 says:

    광야를 걷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속에서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너무 죄송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함께 하여 주심을 믿고 의지하여 믿음의 광야를 온전히 완주하겠습니다.

  2. 유리바다 says:

    하늘 아버지 어머니 너무나 죄송합니다~~
    항상 이기적인 나를 지금도 사랑해주시니 감사드리고 감사드립니다~~
    너무나 감사하고 너~~무 죄송하고 무엇보다도
    어머니 너무나 사랑합니다~~

  3. 새벽이 says:

    정말… 기나긴 시간 동안 참아주신 하나님께 진정 감사드립니다.

  4. 얼마나 오랜시간을 함께하시며 기회를 주시고 사랑을 주시고 깨달을때까지 참고 견디셔야했을 그 깊고 넓고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어제…그리고 오늘…그리고 내일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할지 어떤 상황과 여건이든 원망치않고 나를 잠잠히 사랑하시고 깨닫게 하기위한 귀한시간임을 의심치 않겠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바로 알고 깨달아 진행하는 믿음의 광야길이 되길 소원합니다.

  5. 전민경 says:

    정말 아멘입니다~지나간 광야의역사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광야만을 바라보는 제가 아니라 광야끝에 있는 목적지만을 바라보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믿음의광야를 걷겠습니다~
    항상 함께 하여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6. 미소 says:

    너무 부끄럽습니다 광야의 그 모든것이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사랑 받을 자격조차 없는 이 자녀를 끝없는 사랑으로 손잡아 이끄시며 천국 길 인도하여 주시는 아버지 어머니께 진심으로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죄인을 사랑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젠 감사로써 따르렵니다.

  7. Delight says:

    우리가 당신을 잊어버리고, 약속을 잊어버리고, 본향을 잊어버리며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여기며 불평불만을 쏟아낼 때에도, 우리를 사랑해주셨다는 사실이 마음을 울립니다.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아무리 크다 한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이치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금까지 베풀어주시는 사랑은 너무나도 크고 광활한 것 같습니다. 이 글을 통해 또다시 잊었던 그 사랑을 기억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잊었던 본향을 기억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8. says:

    이스라엘백성을보며 하나님께서 저렇게나 큰 이적과 기사를 베푸시고, 필요하다 할때마다 늘 한없이 주셨는데 어쩜 저렇게 불평,불만을할까 항상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 자신에 대한 거울이며, 제 자신도 하나님께받은 은혜가 헤아릴수없이 크지만 늘 감사함과 영광을 돌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항상 주어진 이 길이 광야길임을 또한 하나님께서 늘 나를 위해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신다는것을 잊지않는 제가 되겠습니다!!

  9. 은혜의 천국 says:

    지난날들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던 적이 정말 많았는데, 오늘의 저는 아직까지 하나님께서 가나안으로 인도 해주시고 회개의 시간을 받고 있는 입장에 있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철없이 하나님을 의심하고 시험하고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했던 모든 죄악들에서 정말 이제는 돌아서겠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이 올 때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기적들을 생각하며 더 기도하겠습니다.

  10. 1004 says:

    이 땅은 잠깐의 삶에 불과하고 우리에겐 영원한 천국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늘 감사로서 하나님을 따를 수 있는 자 되겠습니다

  11. 로얄젤리 says:

    늘 죄만 짓는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선 늘 인내와 사랑으로 인도해주셨는데, 그에 비교할 수 없는 죄인인 우리들 역시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자의로 선택한 천국 길, 불평보다는 감사로, 포기보다는 인내로 걸어가는 자녀가 돼야겠습니다.

  12. 허훈 says:

    이스라엘민족들이 광야길을 걸으면서 수없이 불평하는 모습을 보고 답답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스라엘의 거울이 되어 같은 믿음의 광야길을 걸어가는 나는 이스라엘보다 더 쉽고 편한 상황속에서도 더 많은 불평과 불만을 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도 음식도 없는 광야속에서 40년간 살아남은 이스라엘민족의 비결이 하나님이었음을 깨닫고 나 스스로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여 믿음의 광야길을 이겨내고 하늘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자녀가 되겠습니다.

  13. 세자매 says: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우신 우리 하늘아버지.어머니 이십니다♡
    이 모든 구원 받을 우리의 경계로,교훈으로 지나간 역사를 이루시기까지 얼마나 수고와 노고를 아끼지 않을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와 영광 돌리는 자녀가 되겠습니다.

  14. 항상스마일 says:

    이땅에서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힘들고 괴로워서 한동안 이상황을 어떻게 하면 벗어날까 너무많은 생각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결론은 이땅은 잠깐 지나가는 광야생활에 불과하니 너무 이땅에서의 일은 마음에 담아두지말고 곧 다가올 영원한 천국만을 생각하며 기뻐하자였습니다.그런데 우연히 이 글을 읽게되었고 내가 저런생각을, 결론을 내린것도 내생각이 아닌 항상 나와함께하시고 나의 모든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생각케,주셨다는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였습니다.

  15. 코로나19로 깊은잠에 빠지고 있었던 우리들의 심령을 깨워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인듯하네요… 처음사랑으로 돌이킬수 있도록 은혜로운 말씀 주심에 아버지어머니께 감사 올립니다.

  16. 은혜의 천국 says:

    하나님을 의심하고 완고한 태도를 취하던 때에도 저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고, 삶의 전부로 여기시고 지금도 제 손잡아 천국까지 이끄시는 아버지 어머니께 너무 죄송합니다. 이제는 한 시라도 약속과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고, 감사만 하겠습니다. 겸손히 하나님만 따르겠습니다. 모든 식구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사랑과 희생을 베풀어주시는 엘로힘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17. 칼라잉크 says: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심하고 어리석게 보였는데…
    우리의 거울이였다니.. 그러고 보니 저도 상황에 따라 원망, 불평 했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ㅠㅠ
    이제는 정신 차리고 하나님의 관심 받는 귀한 존재라는 사실에 감사하며 기쁨마음으로 가나안 향해 나아가렵니다

  18. 1000국 소망 학생 says:

    영적 광야길을 걸어가면서 자신이 광야길을 걷고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많이 없던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 것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기회라는 사실을 잊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가나안까지 가는 이 광야길을 더 길게 늘어뜨리는 자녀가 될 것이 아니라 항상 매일을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자녀가 되겠습니다.

  19. Jin says:

    참, 이스라엘 백성들 어지간히 말 안듣고 불평만했네 생각하며 읽고 있었는데… “우리는 당신들의 거울입니다”는 기록을 봤을때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얼마나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던가. 비단 지나간 기록만은 아니겠지요.. 오늘날 우리가 눈여겨보고 되풀이하지 말아야할 기록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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