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왜 십자가형을 받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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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당하신 십자가형은 인간이 지닌 잔인성과 가학성,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형벌이다. 십자가형을 당하는 죄수들은 인권이 무시된 채 길가에서 공개적인 모욕을 당했다.

왜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이토록 참혹하고 치욕적인 십자가형을 선고받으셔야 했을까. 성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관해 알려준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십자가형의 잔인성

십자가형은 사거리, 극장, 언덕 등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장소에서 집행됐다. 이는 로마제국이 민중에게 공포심을 심어 국가를 향한 반란심이나 저항 의지를 초석부터 꺾기 위함이었다. 죄수는 대중 앞에서 십자가에 나체 상태로 매달려 처형당했다. 이러한 처형 방식은 죄수에게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수치심까지 안겨주었다.

일단 십자가형이 선고된 죄수는 자신이 달릴 십자가를 처형 장소까지 직접 지고 가야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의 질타를 받고, 십자가에 달린 이후에도 극심한 고통과 함께 배고픔, 목마름, 수치심을 겪는다. 그러나 목숨이 끊기기 전까지는 절대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없다.

십자가형은 그리스어로 ‘Stauros’라 한다. 사람을 매달 수 있는 말뚝을 의미하는데, 집행 방법은 찌르기, 매달기, 묶기, 못 박기 등 다양한 방식이 사용되었다. 형틀은 기둥 모양이나, ‘T’자 모양, ‘十’자 모양이 보편적이었다.

예수님께서는 7피트(약 2m) 정도 높이의 십자가에 달리셨다. 실제 예수님을 못 박을 때 쓴 못의 길이는 5~7인치(약 12~17cm)인데, 못이 박힐 때 느껴지는 고통은 팔굽뼈의 신경을 잡고 펜치로 비틀어 뭉갤 때의 강도와 비슷하다고 한다.

죄수들은 보통 9시간에서 2~3일, 길게는 일주일까지 십자가형을 당했다. 그런데 성경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6시간 동안 십자가 고난을 당하셨다. 이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부터 예수님은 이미 생명이 위독하신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처형 이전 태형(채찍형)을 받으셨다. 로마의 태형은 매우 잔인하기로 악명 높았다. 이 형벌에는 ‘아홉 꼬리 고양이’라는 이름의 채찍이 사용되었다. 총 39가닥의 줄로 이루어진 채찍 끝에는 동물의 뼈, 쇠구슬, 유리조각 등이 박혀 있어, 한 번만 채찍질을 가해도 죄수는 치명상을 입었다. 로마 군병들은 이 채찍의 무게를 더 무겁게 하기 위해 처형 전 미리 채찍 가죽을 물에 불려 놓았다고 전해진다. 고대에는 이 형벌을 받다가 쇼크사로 즉사한 사례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문턱 직전까지 장시간 동안 채찍질을 받으셨다. 군병이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묵직한 채찍은 예수님의 어깨, 팔, 가슴, 복부, 등, 허벅지, 종아리, 정강이 등 전신에 깊숙이 박혔다. 3세기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태형의 잔인함에 대해 “태형을 당하는 사람의 정맥은 밖으로 드러나고, 근육과 근골, 창자 일부가 노출되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리신 이후에도 인간이 가히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견디셨을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관해 연구하는 의학자들은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극심한 호흡곤란과 혈액순환 장애를 겪었을 것’이라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그뤼네발트의 작품 <십자가형>, 1515년∙유화∙운터린덴 미술관

대한민국의 한 법의학자는 그뤼네발트의 작품 <십자가형>이 예수님의 고통을 잘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가슴 밑 부분이 잘록하게 파여 들어가고 흉벽에는 늑골 모양이 무늬를 이루고 있는 것은 호흡곤란이 오다 지쳐서 탈진상태에 들어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못이 박힌 손바닥 부위를 보면 손가락은 부채 살처럼 퍼져 있는데 이것은 손바닥에 못이 박힐 때의 아픔 때문에 손목과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을 때 보이는 모양이다. 발 부위는 두 발이 겹쳐 못이 박혔으며 발가락의 인대들이 줄무늬처럼 일어선 것 역시 아픔 때문에 일어나는 발가락의 경련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예수님께서 선고받았던 십자가형의 의미

예수님께서 선고받으신 십자가형은 그 당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그야말로 저주의 상징이었다. 십자가는 이미 구약시대부터 저주받은 나무로 여겨졌다.

모세 율법에 따르면 십자가형을 받은 이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사람이므로, 그 시체를 밤새 두지 말고 그날에 장사하라고 명하고 있다.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신명기 21:22~23)

유대인들은 흉악한 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중죄인을 처형한 후 나무 위에 매달았다. 그리고 나무 위에 매달려 죽은 자를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라 칭했다. 그러한 십자가형을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당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형벌을 받으신 이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왜 예수님께서 이런 끔찍한 십자가 형벌을 받으셨는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당신이 메시아임을 증거하시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마태복음 14:14~21),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기적(요한복음 2:1~10) 등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정작 십자가 앞에서는 도수장에 끌려가는 잠잠한 양처럼 고난을 감내하셨다. 열두 영도 더 되는 천사를 불러 당신을 호위하게 할 능력이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신을 위한 이적과 기사를 보이셔야 할 때 그리하지 않으셨다(마태복음 26:53).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극한 고통을 묵묵히 감당하셨던 이유는 무엇일까?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6:23)

성경은 우리 인류가 지은 죄의 대가가 사망이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이 죄는 하늘에서 지은 죄를 의미한다. 즉 인류는 하늘에서 지은 죄로 인해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인류 인생을 가리켜 ‘하늘에서 잃어버린 죄인’이라고 하셨다(누가복음 19:10, 마태복음 9:13). 공교롭게도 우리가 지은 죄는 육신의 죽음뿐 아니라 영혼의 심판과 죽음까지 치러야 비로소 씻어낼 수 있다(요한계시록 20:11~15, 마태복음 10:28). 그렇다면 인류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사망의 종노릇 할 수밖에 없는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로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인류가 감당해야 할 죗값을 대신 치르셨다(요한복음 1:29).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당하셔야 했던 이유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우리의 허물, 우리의 죄로 인한 것이라고 증거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4~6)

우리가 겪어야 했을 사망의 형벌을 예수님께서 대신 짊어지심으로 인류는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형벌을 묵묵히 당하신 이유였다. 예수님의 크고 지극하신 사랑에 우리가 어찌 보답할 수 있을까.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새 언약 유월절

전 세계 모든 기독교는 교파와 상관없이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인류 구원을 위한 가장 큰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기념한다며 십자가를 교회의 상징으로 세우고 섬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작 예수님께서 그 희생을 담아 세우신 구원의 약속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하신 유월절 만찬 자리에서 이 유월절 지키기를 원하고 원하셨다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새 언약의 유월절을 세우시고 전해주시기 위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가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새 언약 유월절이기 때문이다. 새 언약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 흘리심으로써 세워졌으며, 그 처절한 희생의 대가로 우리에게 허락된 진리다.

진정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을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인류의 사망 죄를 대신하신 예수님의 사랑, 그리고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셨던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붙는 것이라

(누가복음 22:15, 19~20)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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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7

17 responses to “예수님은 왜 십자가형을 받으셨을까”

  1. 희생 says:

    예수님께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고난과 끔찍한 고통을 준 십자가를 이시대 자칭 그리스도인이란 사람들이 십자가를 숭배하고 입맞추고 있는 행위는 차마 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는 십자가를 숭배하는 등의 행동을 할게 아니라 유월절을 지키는 자녀가 되어야겠습니다

  2. 물방울 says:

    우리의 죄를 대시 짊어지기고 십자가의 희생을 당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여 십자가 승배말고 거룩한 희생의 피 새언약 유월절을 끝까지 지켜야 겠습니다

  3. 사랑 says:

    아버지의 크나큰 희생을 잊지 않고 우리의 평안과 안식은 아버지의 수치와 모욕, 크나큰 고통으로 인해 누릴 수 있음을 절대로 잊지 않는 자녀가 되어야 겠습니다

  4. 감사 says:

    유대인들이 얼마나 틀에 박혀 사는지, 그들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단단히 굳어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예입니다. 어떻게 자기들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을 저주 받은 자라고 십자가에 매달며 당대 최고 사형 집행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 십자가를 매달며 섬기는 모든 교회는 이천년 전 유대인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5. 물방울 says:

    예수님께서 끔찍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면서까지 우리들에게 허락해주신 유월절 절기를 소중하 지키는 자녀가 되고싶습니다.

  6. 학생 says:

    우리가 당해야 할 고통을 친히 감당하시고 용서받지 못할 사망죄를 깨끗이 씻어주신 아버지의 흠생에 진정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께서 그토록 부탁하셨던 유월절을 끝까지 지켜 아버지의 희생에 조금이나마 보답드리고 싶습니다.

  7. 강남아롱별 says:

    하늘 아버지의 크신 희생을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순종해서 따르는 자녀가 되어 그희생의 조금이라도 보답드리는 자녀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8. 강남아롱별 says:

    우리들을위해 희생하신 아버지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아버지어머니께서 주신 말씀을 순종해서 그 희생에 보답드리는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9. 강남콩 says:

    우리를 위해 말로 다 상상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을 겪으신 하늘 아버지께 무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을 올바르게 깨닫는 자녀가 되어야겠습니다.

  10. 수민 says:

    정말.. 죄송스럽고 감사한 마음밖에 들지 않습니다…

  11. 솔방울 says:

    견디기 힘든 고통을 우리를 위해 대신 당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죄송스럽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교회 사람들이 사형틀을 액세서리로 만들어 좋아하는 모습이 가증스럽게 느껴지네요.

  12. says:

    할말이없습니다
    죄인으로서…너무죄송합니다..감사라는말로는.가당치도않지만…너무너무죄송하고..감사드립니다
    그희생.그고통.그사랑..잊지않겠습니다

  13. 십자가 속에 담긴 예수님의 희생을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많은 사람들이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14. 권영희 says:

    십자가형은 정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을 때 쓰이던 사형도구였는데 우리 때문에 가엾으신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시려 우리가 달려야 할 그 십자가형틀에 대신 죽음으로써 우리가 지은 죄의 값을 대신 치러주시고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여주시기 위해 다시 한번 이 땅에 두 번째 임하신 하늘아버지 하늘어머니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죽을 수밖에 없던 죄인이었건만 구원해주신 하늘아버지 하늘어머니께 다시 한번 감사의 감사를 드립니다

  15. 비타1004 says:

    우리가 당해야 할 십자가의 고통이었지만 우리를 대신해 친히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셨지만 그런 하나님의 희생과 사랑을 깨닫지 못한채 예수님을 죽게 한 십자가를 섬기고 있었던 이 못난 죄인을 하나님의 희생과 사랑을 깨닫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하늘아버지 어머니께 무한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하늘아버지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을 잊지 않는 자녀가 되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무한 감사드립니다.

  16. 문햇살 says:

    죄인을 위한 희생이며 사랑이었는데 그 가치와 예언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던 그들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거울로 비춰집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기억 속에서 망각한채 진리가 무엇인지 알지못하며 참 하나님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지금. 과연 누가 천국에 갈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인가 진지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17. 하늘에서 용서받지 못할 죄를 범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 십자가에 당신의 몸을 대속제물로 희생하시어 영원한 죄사함과 구원의 길 열어주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희생과 사랑을 이 죄인이 어찌 잊을 수 있사오리까! 죄가 더한 곳에 더욱 은혜를 넘치게 하사 이 죄인을 오늘도 하나님의 곁에 머물게 하여 주심에 엘로힘 하나님께 진정으로 무한한 감사와 찬송과 영원한 영광을 올리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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