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는 엘리야를 어떻게 따랐는가?
안상홍님께서는 『설교노트』에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르고, 여호수아는 모세를 따르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고, 나는 어머니를 따른다.”는 친필을 남기셨다. 과연 엘리사는 엘리야를 어떻게 따랐을까? 그리고 두 선지자의 행적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일까?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
엘리야(영어:Elijah, 히브리어:אֵ֣לִיָּ֔הוּ). 그는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로 손꼽힌다. 2천 년 전 예수께서 변화산에서 승천하실 때 구약의 두 선지자와 대화하신 장면이 기록돼 있는데, 한 명은 모세고 다른 한 명은 엘리야다(누가복음 9:28~30).
엘리야는 바알 숭배가 만연했던 아합 왕조 때의 선지자로,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 힘썼던 인물이다. 그는 바알,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하여 참 신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드러낸 후 거짓 선지자들을 전부 도륙했다. 홀로 850명과 대결한다는 것. 사람이라면 두려운 마음이 들 법도 한데, 엘리야는 우상숭배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고자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다. 그리고 불의 응답으로 하나님이 참 신이라는 사실을 많은 이들 앞에서 나타내 보였다. 덕분에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제야 여호와를 인정하고 그 앞에 엎드렸다(열왕기상 18:17~40).
이 사건이 있은 후, 엘리야는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자신의 떠날 기약이 임박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그런데 한 제자가 끊임없이 따라붙었다. 그의 이름은 엘리사(영어:Elisha, 히브리어:אֱלִישָׁע)다.
엘리사는 스승인 엘리야의 뒤를 작정하고 따라붙었다. 함께 동행하길 원했다. 그러나 엘리야는 길갈, 벧엘, 여리고 지방을 지날 때마다 “너는 여기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하며 엘리사를 떼어놓으려 했다. 이 말은 엘리사에게 큰 시험이었을 것이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어떻게 따랐는가?

원래 엘리사는 평범한 농부였다. 여느 때처럼 밭을 갈고 있는데 누군가 자신에게 겉옷을 던졌다. 엘리야였다. 엘리야는 겉옷을 던짐으로써 선지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을 전했다(열왕기상 19:19~20). 이때 엘리사는 자신이 지금까지 추구해왔던 생활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농부인 엘리사에게 소와 쟁기는 큰 재산이었다. 그러나 그는 소를 잡아 백성에게 나누어주고, 쟁기는 불살랐다(열왕기상 19:21). 하나님의 부르심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그때부터 엘리사는 엘리야가 승천할 때까지 긴 시간을 동행하며, 선지자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엘리사에게 감당하기 힘든 시험이 닥쳤다. 바로 스승으로부터 더 이상 따라오지 말라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믿고 따랐던 스승의 입에서 나온 “더는 따라오지 말라”는 말은 몹시 서운하고 견디기 어려운 시험이었을 것이다.
과연 엘리사는 이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길갈에서 벧엘로
여호와께서 ··· 엘리야를 하늘로 끌어올리실 때가 되었을 때 엘리야와 엘리사는 길갈에서 나와 길을 가고 있었다. ···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너는 여기 머물러 있거라. 여호와께서 나에게 벧엘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 엘리사는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지만 선생님이 살아계시는 한 나는 선생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벧엘로 함께 내려갔다.
(현대인의성경 열왕기하 2:1~2)
엘리야와 엘리사는 길을 걷고 있었다. 길갈(Gilgal)에서 벧엘(Bethel)로 가는 도중에 스승인 엘리야가 첫마디 꺼냈다. “너는 여기에 머물러 있으라.” 즉 더 이상 자신을 따라오지 말라는 의미였다. 이때 제자 엘리사의 마음은 어땠을까. 여러 가지 인간적인 고민이 들고, 갈등하고, 이로 인한 괴로움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확고했다. “선생님이 살아계시는 한 결코 떠나지 않겠습니다.” 이 같은 대답은 끝까지 스승과 동행하겠다는 그의 강한 믿음과 각오를 내비친 것이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길갈에서 벧엘까지 동행했다.
벧엘에서 여리고로
그들은 벧엘로 함께 내려갔다. 그곳에 있는 ···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와서 물었다. ‘당신은 여호와께서 ··· 선생님을 ··· 데려가실 줄을 아십니까?’ 그러자 엘리사는 ‘나도 알고 있네. 조용히 하게’ 하였다. ···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제 너는 여기 머물러 있거라. 여호와께서 나에게 여리고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 엘리사는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지만 선생님이 살아계시는 한 나는 선생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여리고로 함께 내려갔다.
(현대인의성경 열왕기하 2:2~4)
벧엘에는 생도들이 있었다. 엘리야는 생전에 거짓 선지자 850명과 대결하여 종교개혁을 일으킨 일 외에, 선지자 학교를 세워 하나님의 복음을 감당할 지도자들을 양성했다. 사람이 죽기 전에는 가장 의미 있는 사람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다. 엘리야는 죽기 전에 벧엘에 있는 선지자 학교를 둘러보고 생도들을 만나 시간을 보냈다.
벧엘의 생도들은 스승인 엘리야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큰 지도자가 세상을 떠난다고 하니 마음이 복잡하고 어수선했을 것이다. 이 같은 그들의 심정은 엘리사에게 건넨 질문, “하나님께서 스승님을 데려가려고 하시는데, 알고 계십니까”하는 말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생도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엘리사도 “나 역시 알고 있다”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벧엘에서 엘리사에게 두 번째 시험이 왔다. 이번에도 스승인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너는 여기(벧엘)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했다. 스승이 두 번째 권하므로 엘리사의 갈등과 고민은 더욱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지만, 선생님이 살아계시는 한 결코 떠나지 않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벧엘에서 여리고까지 동행했다.
여리고에서 요단강으로
그들은 여리고로 함께 내려갔다. 그곳에 있는 ··· 생도들도 엘리사에게 와서 물었다. ‘당신은 여호와께서 ··· 선생님을 ··· 데려가실 줄을 아십니까?’ 그러자 엘리사는 ‘나도 알고 있네. 조용히 하게’ 하였다. ···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여호와께서 나에게 요단강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제발 너는 여기 머물러 있거라.’ 하였으나 엘리사는 전과 마찬가지로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지만 선생님이 살아계시는 한 나는 선생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요단강으로 함께 갔다.
(현대인의성경 열왕기하 2:4~6)
여리고(Jericho)에도 생도들이 있었다. 상황은 반복된다. 그들은 엘리사에게 벧엘의 생도들이 했던 동일한 질문을 한다. 어쩌면 생도 가운데 일부는, 곧 돌아가실 스승님의 뒤를 계속 따라다니는 엘리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세상을 떠날 분과 원거리 동행하는 것을 그다지 의미 있게 생각하지 않았던 제자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도 알고 있네. 조용히 하게”라는 대답에서, 스승의 죽음과 상관없이 스승과 운명을 함께하려 했던 엘리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여리고에서 엘리사에게 세 번째 시험이 왔다. 이번에도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너는 여기(여리고)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했다. 그러나 제자 엘리사의 마음은 확고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스승이 살아있는 한 끝까지 따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여리고에서 요단강까지 함께 동행했다.
그들은 요단강으로 함께 갔다. ··· (여리고) 생도 50명이 멀리서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 두 사람은 요단 강가에 멈춰섰다. 그때 엘리야가 자기 겉옷을 벗어 말아 가지고 그것으로 물을 치자 물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래서 두 사람은 마른 땅을 밟고 건너갔다.
(현대인의성경 열왕기하 2:6~8)
옛적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처럼, 요단강은 범람하고 있었다. 이때 엘리야가 겉옷으로 강물을 내리치자, 요단 강물은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냈다. 두 사람은 바닥을 드러낸 강을 건넜다.
여기서, 두 부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자와 동행하는 자다. 분명히 같은 제자임에도 불구하고 생도들은 엘리야의 여정을 관찰만 했고, 엘리사는 엘리야와 직접 동행했다. 그렇다면 엘리사는 왜 이처럼 끈질긴 집념으로 엘리야를 따랐을까.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물었다. ‘내가 네 곁을 떠나기 전에 너에게 무엇을 해 주었으면 좋겠는지 말해 보아라.’ ‘선생님의 영적 능력을 내가 두 배로 받게 해 주십시오.’
(현대인의성경 열왕기하 2:9)
엘리야는 자신의 임종이 가까웠다는 것을 깨닫고, 마지막으로 엘리사에게 소원을 물었다. 이때 엘리사는 재물, 권력, 영광, 편안한 삶을 구할 수도 있었다. 다시 예전의 직업으로 돌아가 농부로서 더 큰 부를 누리며 살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스승이 가지고 있는 성령의 능력에 두 배를 구했다. 무슨 의미일까. 성령을 받아 선지자의 직무를 계속 수행하겠다는 뜻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정치, 종교적으로 혼탁했다. 하나였던 나라는 남유다, 북이스라엘로 갈라져 대립의 양상을 띠고 있었고, 북이스라엘은 우상 숭배에 빠져 하나님께 벌을 받아 기근과 전쟁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런 혼란한 시기에, 엘리사는 자신의 부족한 능력으로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선지자의 직무를 수행하는 근원이 성령의 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그는, 주저 없이 스승이 가지고 있는 성령에 두 배를 구한 것이다.
일찍이 스승인 엘리야는 하나님께 받은 세 가지 사명이 있었다.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시리아) 왕이 되게 하는 것,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는 것,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선지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열왕기상 19:15~16).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후계자로 삼는 일은 행했지만, 하사엘과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는 일은 하지 못했다.
스승이 남겨놓은 이 사역을 완수한 사람이 있다. 벧엘의 제자도, 여리고의 제자도 아니다. 오직 생명을 건 각오로 엘리야를 끝까지 붙잡은 엘리사다(열왕기하 8:12~15, 9:1~13).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했던 엘리사의 간절한 마음과 집념이 엘리야를 끝까지 따르게 한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엘리사의 행적을 통해 배우는 교훈

성경 학자들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길갈에서 벧엘까지는 약12km, 벧엘에서 여리고까지는 약20km, 여리고에서 요단강까지는 약12km라고 한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 걸었던 길은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었다. 더구나 요즘처럼 아스팔트가 깔려 있어 걷기 쉬운 길도 아니었다.
엘리사는 길갈, 벧엘, 여리고, 요단을 지날 때마다 선지자의 길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 도중에 그만두고 다시 농부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길이 험해도, 끝이 보이지 않아도, 인내하고 참고 견디며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갔다.
그의 기록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랐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끝까지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끝까지 따랐던 원동력은 자신의 유익에 있지 않았다. 자신이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는 데 있지 않았다. 오직 스승의 뒤를 이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선지자의 사명을 완수하려는 데에 있었다. 눈여겨볼 점은 엘리사가 사명을 받았듯이 오늘날 성도들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다는 것이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하기만 하면, ···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새번역 사도행전 20:24)
전도. 성도들이 해야 할 사명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전도’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은혜의 직무로 여겼다. 인생의 사명으로 여겼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사명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각자의 위치에서 새 언약 복음의 직무를 완수하라는 부탁의 말씀을 남기셨다(마태복음 28:18~20, 요한복음 21:15~17, 디모데후서 4:5).
그런데 그 길이 잘 닦인 아스팔트 길만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장애물, 험난한 장벽, 피하고 싶은 상황들과 마주할 수 있다. 고난과 희생이 요구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성경은 엘리사처럼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전도자의 사명에 열심 내며, 인내로 하나님을 끝까지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기록한다(요한계시록 14:4,12). 이들은 하나님께 ‘인정 받은 자’라는 특별한 칭호를 가지고 있다(데살로니가전서 2:4).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들을 구원하실 것이다(빌립보서 4:3)
그러나 ···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끝까지 이르렀도다
(로마서 10:18)
성도의 사명이 종료되는 시간은 반드시 온다. 다시 말해 온 세상에 새 언약 복음이 퍼지는 날이 분명히 온다는 얘기다. 그날에 기쁨을 누릴 자는 벧엘과 여리고의 제자들처럼 지켜보기만 하는 자들이 아니다. 길이 험하다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중도에 포기하는 자들이 아니다. 오직 자신의 시선을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고정하며, 성도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애쓰는 자들이다. 이들이 받을 영광은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다(고린도전서 2:9, 요한계시록 22:5).
지금,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 당신의 모습은, 끈질긴 집념과 믿음으로 따랐던 엘리사와 같은 모습인가?
<참고자료>
- 토마스 칸스터블(Thomas L. Constable), 『열왕기상.하』, 150.
- “길갈(Gilgal)”, 『라이프성경사전』, 생명의말씀사(2006)
- 박재갑, 『오아시스 성경강해 구약 8권 분열왕국시대』, 좋은땅(2015)
궁금했던 내용을 쉽게 설명 해주시고 깊은 감동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망 없이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천국 소망을 심어주라고 전도의 사명을 허락 받은 전도인으로서, 타인에게 소망 주는 일에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루,하루를 살아가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끝까지 따르고 싶은데
따라오지 말라고 하는 엘리야의 말이 얼마나 큰 시험이었을까요
하지만 끝까지 스승을 따르고
결국 스승보다 갑절이나 영감을 얻은 엘리야의 충성심이 참 눈부시게 부럽습니다
엘리야의 사명을 따르는 엘리사가 되는 것이 이 시대의 사명인 것을 망각하고 있었던 못난 자녀에게 큰 깨달음을 얻게 하여 주심에 엘로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자신의 모든것을 버리고 끝까지 따랐던 이유가 선지자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끝까지 따랐던 것처럼 하나님을 끝까지 따를수 있는 자녀가 되어야겠다고 느꼈고, 하나님께서 온세계에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허락하여 주셨으니 하나님의 복음을 온세계에 전파 할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자녀가 되겠습니다. 또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어머니와 동행하겠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를때 동행하는 자와 지켜만 본 자의 차이를 알려주셨는데 우리는 결코 바라만 보는 자가 아니라 끝까지 복음을 위해서 열심내고 끝까지 하나님만을 따르는 자녀가 되어야 겠다.
새노래 속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르듯 우리도 어머니를 따르라는 가사를 이제야 진정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지자의 사명을 소중히 여기고 어떠한 상황 속에 처해져있더라도 묵묵히 어머니께서 가시는 길 따라 동행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그 길이 평탄하지만은 않아 때론 고난과 시련이 올지라도 엘리사처럼 복음에 끈기있고 열정있게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전도를 인생의 직무라 여겼던것처럼 저또한 끈질긴 집념과 믿음으로 포기하지않고 늘 아버지 어머니를 따르며 전도에 힘쓰는 자녀가 되겠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랐던만큼 나는 하나님께 충성하고 있는가를 되돌아 보았습니다.
모든것을 버리고 시험을 이기며 신념으로서 따르는 엘리사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 어머니와 동행하는 이 삶을 더욱더 가치있고 귀중히 여기며 구원끝을 그 끝까지 놓치않아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엘리야를 따르던 엘리사의 믿음은 결단코 어중간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역시도 작은 일에도 세상과 타협하는 어중간한 믿음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100%의 믿음을 가져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음을 알려주시는 아버지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온전한 순종과 실천으로 복음에 힘쓰며 어머니와 동행하는 자녀가 되어야겠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랐던만큼 나는 하나님께 충성하고 있는가를 되돌아 보았습니다.
모든것을 버리고 시험을 이기며 신념으로서 따르는 엘리사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 어머니와 동행하는 이 삶을 더욱더 가치있고 귀중히 여기며 구원끝을 그 끝까지 놓치않아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따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날 어머니께서 제게 허락하여 주신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하나님을 열심히 의지해서 꼭 끝까지 이 사명을 감당하겠습니다. 천국에서 가장 가치있는 사명을 허락해 주신 엘로힘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도의 사명’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이 되어 오셔서 전해주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내는 것이 이 마지막 때 예언에 동참하는 자의 사명임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지켜보기만 하는 자로 이 생을 마치지 않겠습니다.
엘리야를 따라갈때 수많은 험한길들도 있었을텐데 포기치 않고 인내하여 결국 선지자의 사명을 이어받은 엘리사처럼 성령시대 하나님의 뒤를 따르는 우리도 길이 험하든 평탄하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뒤를 좇고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이런 깨달음 주신 아버지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엘리야의 행적을 먼 발치에서 지켜만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엘리사는 지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과 고통이 있더라도 끝까지 엘리야와 동행하였고 결국 엘리야의 사명을 이어 받아 하시엘과 예후에게 기름을 붇는 사명을 완수하였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저 역시도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복음을 완수하는 사명을 반드시 이루겠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르듯 하나님의 전도자로 삼아주시고
엘리사의 마음으로 일깨워주신
아버지어머니께 감사와영광을 돌립니다
성경에서 봤던 내용을 패스티브에서 이해가 잘 되도록 설명해주시니 엘리사가 엘리야를 끝까지 따랐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와 끝까지 동행했던 것처럼 저도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끝까지 동행하고 싶습니다.
깨달음을 주시는 엘로힘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저의 마음속에 엘리사의 마음을 갖게 해주시길 엘로힘 하나님께 간구드립니다
엘리사와 같은 믿음으로 끝까지 아버지어머니와 동행하는 삶속에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외칠수있는 복음의 일꾼이 되겠습니다~
코로나19로 영적 잠에 취해있었던는 저희들을 다시금 일깨워 주시고 엘로힘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깨달음주신 하늘아버지어머니께 진심으로 감사와 영광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