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후회스러운 장소는 어디일까. 아마 ‘가데스 바네아’일 것이다. 이곳에서 있었던 일련의 사건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척박한 광야에서 38년을 더 유리해야만 했기 때문이다(신명기 2:14, 민수기 14:33~34). 과연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가데스 바네아 사건

출애굽한지 2년이 흐른 어느 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란 광야 가데스 바네아(Kadesh Barnea)에 이르렀다. 그곳은 가나안과 매우 가까운 접경지역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주저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약속한 그 땅을 차지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신명기 1:21). 애초에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2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계획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의 명령이 내렸지만 백성들은 이구동성으로 건의했다. 그곳을 미리 정탐하여 작전을 세우자고 말이다.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지, 어느 성을 먼저 점령해야 할지,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군사적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이에 모세는 각 지파에서 열두 명의 정탐꾼을 선발하여 가나안으로 파견했다(신명기 1:22~23, 민수기 13:1~16).

열두 정탐꾼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출발하여 가나안 땅 깊숙한 곳까지 올라가 탐지했다. 가나안 땅의 최남단인 신 광야(Zin)에서부터, 북쪽 경계 지역인 하맛(Hamath)과 르홉(Rehob)에까지 탐지했다. 그 중간 지역인 헤브론(Hebron) 근처 에스골 골짜기에서는 각종 과일도 땄다. 총 40일 동안 가나안 남북지역 전체를 관통하여 살펴본 것이다(민수기 13:21~25).

가데스바네아
James Tissot 作 가나안의 포도송이

가나안 땅에 대한 열두 정탐꾼의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하나님 말씀대로 그곳은 최고의 경작지였다. 정탐꾼들은 석류와 무화과, 그리고 두 사람이 어깨에 메고 들어야 할 만큼 커다란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보여주었다. 그곳이 매우 비옥하고 기름진 땅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민수기 13:23, 26~27).

그러나 문제는 그 땅의 거민들이었다. 가나안 남쪽 지방에는 아멜렉 족속이, 산간 지방에는 헷, 여부스, 아모리 족속이, 해변과 요단 계곡에는 가나안 족속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힌 약탈자들이다. 힘이 센 대장부였고, 신장이 크고 장대한 거인족이었다. 그에 비해 이스라엘은 메뚜기 같았다(민수기 13:28~29, 32~33).

여기서 ‘능히 이긴다’는 여호수아와 갈렙, ‘능히 이기지 못한다’는 열 정탐꾼의 의견으로 나뉘었다. 능히 이기지 못하는 요인은 ‘우리가 스스로 보기에는’에 초점이 맞춰 있었고, 능히 이긴다는 요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에 초점이 맞춰 있었다(민수기 13:33, 14:9).

그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제히 아우성을 쳤다. 밤새도록 통곡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비방했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여 이집트에서 이곳으로 끌고 왔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이 땅으로 끌고 와서 칼에 맞아 죽게 하는가?’,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자!’ (민수기 14:1~4, 신명기 1:27)

하나님께서 그들이 미워 거인족의 손에 죽게 하려고 이집트에서 건지셨는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집트에서 해방시켜 달라’는 그들의 신음 소리에 응답하신 것이다(출애굽기 6:5~6). 그들을 사랑하셨기에 학대와 고역의 땅에서 기적을 일으켜 해방시켜 주셨고, 그들을 사랑하셨기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약속해 주셨다. 광야 길을 걷는 내내 아버지가 자식을 돌보듯, 불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안아서 가나안 접경지역인 가데스 바네아에까지 이르게 하신 것이다(신명기 1:31).

그러나 당사자들은 되려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원망하고 비방했다. 왜 그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하나님이 우리를, 잊은 것 같다

넓고 험준한 광야길, 이 길을 걷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는 어느새 약속의 땅 가나안 보다, 당장 눈앞의 현실이 더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약속의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걷는 그들은 그곳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인내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시험거리’가 되어 버렸다.

홍해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애굽)를 떠나 홍해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이집트 왕 파라오가 이스라엘의 해방을 후회하여 그들을 다시 노예로 삼고자 무섭게 추격했다. 이집트 군대가 다가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한 일은 ‘원망’이었다.

‘이집트에 묘 자리가 없어서, 우리를 광야에 끌어내어 죽이려는 것입니까?’, ‘무엇 때문에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이 꼴을 당하게 합니까?’,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이집트 사람을 섬기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출애굽기 14:10~12)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 물의 두 장벽 사이로 백성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하셨다. 장정만 60만 명. 그에 딸린 식솔들까지 합친다면 어마어마한 숫자일 것이다. 그 거대한 무리가 홍해를 건너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으로 이집트 사람들이 있는 쪽은 어둡게 하셨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는 쪽은 환하게 밝혀주셨다. 때문에 이집트 군대는 이스라엘 진영에 접근하지 못했고, 이스라엘은 무사히 홍해를 건널 수 있었다. 백성들은 자신들을 보호해 주었던 물의 장벽이, 이집트 사람들을 삼켜버리는 놀라운 기적까지 목도했다. 그들은 경이로운 구원의 역사를 보며 흥에 겨워 하나님을 찬양했다(출애굽기 15:1~8).

수르 광야에서

이제부터 본격적인 자유인으로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향한 걸음을 시작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은 수르 광야에 들어갔다. 거기서 한 샘물을 발견하여 물을 마셨는데, 쓴물이었다. 그들의 입에서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도대체 무엇을 마시라는 것입니까?’ (출애굽기 15:22~24)

이때는 홍해를 건넌지 겨우 사흘이 지난 후였다. 이스라엘은 쓴물을 마셔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곧 불만을 품고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그들의 원망하는 소리에도 하나님께서는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셨다(출애굽기 15:25).

신 광야(Sin)에서

신 광야(sin)
James Tissot 作 만나를 거두는 백성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 광야에 이르렀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때다. 어찌된 일인지 백성들은 또 모세에게 항의했다.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 하나님의 손에 맞아 죽느니만 못합니다’, ‘이집트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떡을 먹던 우리를 이 광야로 데리고 나와 모조리 굶겨 죽일 작정입니까!’ (출애굽기 16:1~3)

그들의 불평은 모세를 향했지만, 실상 하나님께 한 것이었다(출애굽기 16:7~8, 11~12). 이집트에서의 10가지 기적, 홍해 기적, 쓴물을 단물로 바꿔주신 기적을 상기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구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음식이 떨어지자 백성들은 낙담하고 불평했다. 채찍에 맞아가며 이집트에서 먹던 떡만 떠올렸다. 당장 눈앞에 어려운 ‘상황’이 닥치자, 노예에서 자유인이 되어 약속의 땅에 가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 백지가 되었다.

그들의 원망하는 소리에도, 하나님께서는 떡과 고기를 풍족히 내려주셨다. 떡은 꿀 섞은 과자 같았다. 백성들은 이것을 ‘만나’라고 불렀다(출애굽기 16:31). 일주일에 6일 동안, 특별히 안식일 예비일에는 다음날에도 먹을 수 있도록 평소보다 두 배의 양만큼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다(출애굽기 16:16~18, 22~23). 덕분에 백성들은 만나가 처음 내리던 날부터 약속의 땅 강변에 진을 칠 때까지, 40년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출애굽기 16:35)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살펴주시고 그들과 항상 동행하신다는 증거였다. 하나님은 광야의 열악한 환경에서 수백 만의 백성들에게 필요한 ‘하늘의 양식’을 제공하셨다(시편 78:23~25). 광야에서 굶어 죽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이유다.

르비딤에서

장소가 바뀌었다. 이스라엘은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Rephidim)에 진을 쳤다. 거기에는 마실 물이 없었다. 이제 백성들은 습관처럼 모세를 원망했다.

‘어째서 당신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우리와 우리 자녀와 가축이 다 목말라 죽게 합니까?’,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는 게 맞습니까?’ (출애굽기 17:3,7)

이번에는 돌을 들어 모세의 목숨까지 위협하려고 했다. 이전 수르 광야, 신 광야에서 했던 불평보다 더 심했다. 광야에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백성들의 인내는 바닥을 드러냈고, 의심과 원망의 수위는 점점 커졌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계속된 의심과 불평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것을 계속 공급해 주셨다. 황량하고 말라붙은 땅의 바위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마실 수 있는 엄청난 양의 물을 내셨다(출애굽기 17:5~6, 시편 105:39~41).

시내산에서

시내산
Andrea Celesti 作 금송아지 숭배

장소가 바뀌었다. 이번에는 시내 광야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과 율법을 선포하시려 모세를 시내산 꼭대기로 부르셨고, 모세는 이 같은 사실을 백성들에게 알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모세가 오랫동안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백성들은 ‘기다림’이라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백성은, 모세가 산에서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으니, 아론에게로 몰려가서 말하였다. “일어나서,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올라오게 한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론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의 아내와 아들 딸들이 귀에 달고 있는 금고리들을 빼서, 나에게 가져 오시오.” (새번역 출애굽기 32:1~2)

백성들이 요청한 것은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들은 여호와를 유일하게 섬기고 경외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지긋지긋한 광야에서 당장이라도 벗어나게 해줄 신이 필요했다. 만약 그 필요를 채우지 못한다면 얼마든지 ‘다른 신’을 만들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 사람들의 금, 은, 보석, 값진 물건들을 손에 쥔 채 해방되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다(출애굽기 12:35~36, 창세기 15:13~14). 그런데 그것으로 다른 신을 만들고 좋은 옷으로 치장시킨 뒤 그 앞에서 경배한 것이다(출애굽기 32:3~6). 이는 하나님을 능멸하는 행위였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수많은 기적들은 이렇듯 ‘상황’이라는 시험 앞에서 매번 잊혔다. 외부상황에 믿음이 무너졌고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디베랴,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디베랴(Tiberias)에 이르렀다. 이번에는 ‘험한 길’과 맞닥뜨렸다. 그들은 길로 인해 고생스럽다며 악한 말을 쏟아냈다. 이때 하나님께서 진 끝을 불사르신 것은, 그들이 약속의 땅에 나아가려 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면서 불평만 했음을 보여준다(민수기 11:1).

이후 디베랴를 떠나 기브롯 핫다아와(Kibroth Hattaavah)에 이르렀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섞여 사는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혼합 민족들’로서 이방인이었다(출애굽기 12:38). 이방인들은 이집트에서 먹었던 음식들을 기억하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주변에서 불평이 시작되자 이스라엘 백성들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또 다시 하나님을 원망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줄까? 이집트에서 생선을 공짜로 먹던 기억이 생생한데, 그 밖에도 오이, 수박, 부추, 파, 마늘이 눈에 선한데, 이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이 만나밖에 없으니, 입맛마저 떨어졌다’ (민수기 11:4~6)

이스라엘 백성들은 척박한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제공해주시는 만나에 염증을 느꼈다. 그들의 입에서 ‘가시 돋친’ 소리가 나왔다.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하면서 입맛대로 음식을 요구했다(시편 78:17~20).

하나님께서는 바람을 일으켜 그 진중에 메추라기를 내려 보내셨다. 백성들은 배부를 때까지 실컷 먹었다. 하나님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넉넉히 주셨다(민수기 11:31~32, 시편 78:26~29).

가데스 바네아 도착

그렇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로 가나안 입구, 가데스 바네아까지 도착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한 그 땅 앞에 이른 것이다. 열두 정탐꾼을 통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이라는 것도 확인했다(민수기 13:27). 이제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골이 장대한 적들의 외형에 비해, 메뚜기 같은 자신들의 상황을 생각했다. 곧 악한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비방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집트에서 나온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눈앞의 상황에 믿음이 무너진 것이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아니면 우리가 이 광야에서라도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리로 끌고 와서 칼에 맞아 죽게 하는가?” (민수기 14:2~3)

이는 치명적인 결과를 불렀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이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그들에게 그대로 실현됐다(민수기 14:11,27~28). 당초 2년의 노정이 취소되고 38년의 노정이 추가되어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랑했다. 입에서 나온 말대로 백성들은 땅이 갈라져 죽기도 하고, 불에 소멸되기도 하고, 불뱀, 염병, 전쟁으로 죽기도 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출애굽 1세대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생을 마감했다(민수기 14:29~35).

하나님은 그들을, 잊지 않았다

이스라엘 광야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그리고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곳이다. 씨를 뿌릴 수도, 추수를 할 수도 없다. 사람이 무슨 노력을 해도 집, 식량, 옷을 구할 수 없다. 이런 절망적인 장소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장비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버젓이 광야에서 생존할 수 있었을까.

불가사의한 그들의 생존비법에는 ‘하나님’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먹고 마실 것을 다 채워주셨다. 만나를 비처럼 내려 양식을 주셨고, 반석에서 시냇물이 흘러나오게 하셨고, 또 바람으로 메추라기를 먼지처럼 내려주셨다. 구름기둥으로 낮의 뜨거운 햇빛을 막아주셨고, 불기둥으로 밤의 매서운 추위를 견딜 수 있도록 하셨다. 더구나 그 험난한 광야 길에서 백성들의 의복조차 헤어지지 않았고, 발이 부릍지도 않았다(신명기 8:4, 29:5).

이 모든 일을 보고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손길과 관심을 믿지 않았다. 광야 한복판에서 약속의 땅은 보이지 않았고, 눈앞의 상황만 보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죄를 지었고, 거역했고, ‘하나님이 우리를 잊어버린 것 같다’, ‘하나님은 도대체 뭘 하고 계시냐’,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계시는 거냐’며 소리 높여, 혹은 마음 속으로 하나님을 시험했다.

저들이 사막에서 얼마나 그에게 반역하였던가? 광야에서 얼마나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던가? 하나님을 거듭거듭 시험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괴롭혔으며, 자기들을 원수의 손에서 구해 주시던 그 날, 그 힘을 그들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공동변역 시편 78:40~42)

하나님은 그들의 손을 잡고 광야를 통과하고 계셨다. 단 ‘한시도’ 그들을 잊지 않고, 광야 너머의 그 아름다운 땅에 도착할 수 있도록 온 관심을 쏟으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은 괴롭고 슬프고 아프셨다.

“우리는 당신들의 거울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의 교훈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옛날 우리 조상들이 광야에서 겪은 일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모세 때에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의 인도를 받아 홍해를 건넜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 대부분을 기쁘게 여기지 않으셨으므로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습니다. ··· 이런 일은 우리에게 거울이 되어 우리도 그들처럼 악을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 우리는 그들처럼 시험하지 맙시다. ··· 우리는 그들처럼 불평하지 맙시다. 그들이 당한 이런 일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었으며 세상 끝날을 눈앞에 둔 우리에게 하나의 경고로서 기록되었습니다 (현대인의성경 고린도전서 10:1~11)

우리는 광야에 있지만 이를 항상 인지하지 못한다. 실제 메마른 사막이 아닌 한국 또는 유럽, 아메리카 등의 대륙 어딘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짜 광야를 걷고 있진 않지만 ‘믿음’의 광야를 매일같이 걷고 있다. 약속의 땅에 도착하기까지 원치 않는 길과 상황에 마주할 때도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음식이 넉넉하길 원했고, 삶이 안락하길 원했다. 육체의 소욕이 충족되길 바랐다. 원치 않는 상황과 어려움이 닥치면 가나안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할 만큼, 그들의 마음은 약속의 땅이 아닌 광야에 있었다. 당장 눈앞의 현실이 그들의 머릿속에 가득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 관한 성경의 기록은, 오늘날 천국을 목표로 두고 광야를 걷고 있는 우리의 믿음을 되뇌게 한다. 만약 지금의 광야 길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공허해 보이고, 그 약속이 멀게만 느껴지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고, 원치 않는 상황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보다 다른 것에 초점을 둔다면 실격자라고 말한다(고린도후서 13:5).

광야는 잠시 머무르는 곳이다.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 일정 기간 스치는 장소다. 구름기둥이 움직이면 언제라도 말뚝을 뽑고 이동해야 한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기초를 박고, 그만 짐을 풀고 정착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언제든 가나안을 향해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지난날 내가 광야에 남긴 발자취를 되돌아보자. 그동안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이끄셨고, 어떻게 도와주셨으며, 어떻게 보호해주셨고,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말이다. 여러 가지 상황에 처할 때마다, 출애굽 1세대와 같은 완고한 태도와 불평, 믿음 없는 생각과 말과 행동, 원망의 소리에도 어떻게 참아주셨는가.

완고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심할 때, 그럼에도 나로 인해 웃고, 나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나로 인해 애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겠는가(스바냐 3:17). 내가 관심의 전부이고, 삶의 전부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애달프셨겠는가(로마서 5:6~8, 이사야 49:15).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손을 잡고 광야를 통과하고 계신다. 이제, 광야를 통과하면 마음 속에서 그리던 황홀한 세계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요한계시록 21:4). 기억하자. 광야는 하나님이 우리를 내던지고 잊어버리는 곳이 아니다. 우리가 넘어지고 포기하고 주저앉을 곳이 아니다. 오히려 하늘의 상급이 기다리는 약속의 땅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야 할 곳이다(디모데후서 4:5~8, 요한계시록 22:12).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광야의 의미를 깨달았더라면, 또 오늘날 우리들이 광야의 바른 의미를 깨닫는다면, 이 길이 그토록 괴로운 장소만은 아닐 것이다. 단언컨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지금의 이 광야 길은 특별한 여정인 것이다.

댓글
  1. Jin

    참, 이스라엘 백성들 어지간히 말 안듣고 불평만했네 생각하며 읽고 있었는데… “우리는 당신들의 거울입니다”는 기록을 봤을때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얼마나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던가. 비단 지나간 기록만은 아니겠지요.. 오늘날 우리가 눈여겨보고 되풀이하지 말아야할 기록이 아닌가 싶습니다.

  2. 1000국 소망 학생

    영적 광야길을 걸어가면서 자신이 광야길을 걷고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많이 없던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 것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기회라는 사실을 잊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가나안까지 가는 이 광야길을 더 길게 늘어뜨리는 자녀가 될 것이 아니라 항상 매일을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자녀가 되겠습니다.

  3. 칼라잉크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심하고 어리석게 보였는데…
    우리의 거울이였다니.. 그러고 보니 저도 상황에 따라 원망, 불평 했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ㅠㅠ
    이제는 정신 차리고 하나님의 관심 받는 귀한 존재라는 사실에 감사하며 기쁨마음으로 가나안 향해 나아가렵니다

  4. 은혜의 천국

    하나님을 의심하고 완고한 태도를 취하던 때에도 저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고, 삶의 전부로 여기시고 지금도 제 손잡아 천국까지 이끄시는 아버지 어머니께 너무 죄송합니다. 이제는 한 시라도 약속과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고, 감사만 하겠습니다. 겸손히 하나님만 따르겠습니다. 모든 식구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사랑과 희생을 베풀어주시는 엘로힘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5. 아자아자

    코로나19로 깊은잠에 빠지고 있었던 우리들의 심령을 깨워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인듯하네요… 처음사랑으로 돌이킬수 있도록 은혜로운 말씀 주심에 아버지어머니께 감사 올립니다.

  6. 항상스마일

    이땅에서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힘들고 괴로워서 한동안 이상황을 어떻게 하면 벗어날까 너무많은 생각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결론은 이땅은 잠깐 지나가는 광야생활에 불과하니 너무 이땅에서의 일은 마음에 담아두지말고 곧 다가올 영원한 천국만을 생각하며 기뻐하자였습니다.그런데 우연히 이 글을 읽게되었고 내가 저런생각을, 결론을 내린것도 내생각이 아닌 항상 나와함께하시고 나의 모든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생각케,주셨다는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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