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교회의 기획상품

면죄부

면죄부

면죄부(免罪符, indulgence)는 중세시대 로마가톨릭에서 금전이나 재물을 바친 사람에게 죄가 사면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교황의 이름으로 발행한 증명서를 가리킨다. 증명서는 ‘면죄부’, ‘면벌부’, ‘속죄부’라고 불렸다.

면죄부 판매의 시작

면죄부라는 제도가 생긴 건 11세기 십자군 전쟁 때였다. 교황 우르바노 2세(Urbanus II)는 기독교 성지 탈환을 목적으로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다. 그는 십자군 참전을 독려하기 위해, 십자군에 참여하여 전사하거나 살아서 돌아오는 이들에게 죄의 벌을 면제해 주겠다고 공표했다.

저주 받은 민족, 신을 부인하는 민족이 기독교인들의 땅을 무력으로 침공해 온갖 약탈을 자행했노라. 신앙이 없는 자들에 대항해 무기를 드는 모든 사람의 죄는 완전히 용서받을 것이고, 전쟁에서 죽는 사람은 영생의 보상을 얻게 될 것이다.

전쟁에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십자군 전쟁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르바노 2세는 교황의 권한으로 직접 전쟁에 참전하지 않고, 전쟁에 필요한 기부금을 낸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죄의 벌을 면제해주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자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귀족들이 돈을 내기 시작했다. 교황의 면죄부와 돈이 결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교황 칼릭투스(Calixtus)는 연옥에 있는 영혼들도 면죄부에 의해 구원이 가능하다고 선언함으로써 면죄부 판매를 부채질했다(종교개혁사 참고).

150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황의 면죄부는 다른 목적을 위해 또 등장했다. 교황 율리우스 2세(Julius II) 때였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성 베드로 대성당’의 교회 건축을 지시했다. 그리고 각처에 있는 예술가들을 로마에 불러들여 바티칸 성당 내부를 화려하게 꾸몄다. 엄청난 건축 자금이 필요했다. 이때 율리우스 2세가 생각해낸 건 면죄부였다. 그는 1506년에 희년 면죄부를 선포했고, 면죄부 판매로 얻은 수익을 성당 건축 기금에 사용했다.

면죄부 판매는 교황청의 주요 수입원이 되었다. 교황 율리우스 2세의 후임인 레오 10세(Leo.X)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리모델링할 막대한 자금조달을 위해 도미니크 수도회의 한 신부에게 면죄부 판매를 의뢰했다. 그 신부의 이름은 ‘요한 테첼(Johann Tetzel)’이었다. 교황의 특명을 받은 테첼은 지옥불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을 펼쳐놓고, 면죄부를 팔면서 다음과 같은 설교를 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죽은 친척들과 친구들이 여러분을 향해 애원하며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오. 우리는 무서운 고통 중에 빠져 있는데 당신들은 적은 돈으로 우리들을 건져낼 수 있지 않소!’ 여러분은 저들을 건져내기를 원치 않습니까? ···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애원하며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 동전이 여러분의 부모들을 구해낼 수가 있습니다. 동전이 궤 속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영혼이 연옥에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저들의 영혼을 낙원으로 인도하기를 원치 않으십니까?

(Paul Robeson, 『Here I Stand』)

여러 자료에 의하면, 당시 가톨릭교인들은 연옥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연옥의 형벌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가르쳤기 때문이다. 당시 성경을 가질 수도 없고, 읽을 수도 없는 신자들은 교회 지도자의 말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테첼의 설교를 들은 가톨릭 신자들은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들을 연옥의 불꽃 고통에서 구하기 위해 앞다투어 돈을 주고 면죄부를 구입했다.

면죄부의 가격

면죄부의 가격은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평민들은 한 장당 ‘4분의 1플로린’을 내야 했다. 지금의 화폐가치로 따진다면 10만 원 정도하는 가격이다. 당시 이 돈이면 6개월치 월세를 낼 수 있었고, 송아지 3마리를 살 수 있었다. 평민들이 이 돈을 모으려면 몇 달 동안 한 푼도 안 써야 가능했다.

한편 테첼은 영혼구원을 담보로 얻은 수익금의 반은 성 베드로 대성당의 재건에 사용했고, 반은 고위 신부들과 함께 일정 몫을 취했다. 가톨릭사전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이 관행은 중대한 위험을 내포하여서 곧 넘치는 악의 근원이 되버렸으니 ··· 돈을 긁어 모으는 방편인 면죄부는 금전상의 이익의 수단으로 돈을 목적으로 일하는 성직자들에 의하여 활용되어 ··· 그 남용이 편만하게 되었다.

(카톨릭 백과사전(The Catholic Encyclopedia). 7권, P. 786~787, “면죄부” 항)

면죄부 판매를 비판한 가톨릭 사제

보다 못한 독일의 사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폭발했다. 그가 살던 비텐베르크(Wittenberg)에까지 면죄부 판매 바람이 불어왔기 때문이다.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성교회 정문에 면죄부와 연옥에 대한 반박문을 골자로 한 ‘95개조 의견서’를 내걸고 공개토론을 요구했다. 그러자 교황 레오 10세는 마르틴 루터를 파문시켰다. 이후 트리엔트 공의회(Council of Trient)에서 면죄부의 폐단과 폐해가 언급되면서 면죄부 판매는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사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마가복음 2:1~12).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는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에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진다(에베소서 1:7, 마태복음 26:28). 돈을 주고 사려야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영혼들을 대상으로 ‘죄 용서’를 돈벌이 기획상품으로 거래한 교회 지도자들의 죗값은, 하나님께 억만금을 바친다 해도 면죄받을 수 없을 것이다.

<참고자료>
1. ‘종교 전쟁, 실은 신앙 때문이 아니다’, 오마이뉴스, 2017. 6. 21.
2. ‘율리우스 2세와 미켈란젤로의 세기적 만남’, 중도일보, 2017. 4. 21.
3. 테첼[Johann Tetzel], 두산백과.
4. ‘중세시대 면죄부 판매자는 어떻게 군중을 홀렸나’, 조선일보, 2017. 10. 13.
5. Paul Robeson, 『Here I Stand』
6. ‘루터(Luther) “신은 교회에 돈을 받고 죄를 면하라 하지 않았다”’, TOP DAILY, 2020. 9. 18.
7. ‘한국판 면죄부(免罪符, indulgence) 주식회사’, 청주일보, 2018. 2. 2.

20 thoughts on “로마교회의 기획상품”

  1. 구원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얻을 수 있는 축복입니다. 부족한 자녀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2. 동전이 궤 속에 떨어지는 소리가 영혼을 구원해준다거나….지옥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생각했다는 것을 읽고 보니 당시 사람들의 신앙이 얼마나 성경과 멀리 있었는지 알 수 있네요…

  3.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보혈의 피 하나님의 은혜로 받을 수 있는것이지 절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께로 나아가야한다

  4. 돈으로 구원얻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구원을 허락해주실 참 하나님을 찾고 영접해야 합니다.

  5. 구원은 돈으로 사고 파는것이 아니라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만이 허락해주실 수 있다는것을 꼭 깨달아야합니다.

  6. 진정한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완전한 구원을 받고싶다면 구원자이신 참 하나님을 찾아야합니다

  7. 죄사함은 돈으로 얻을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만이 있어야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8. 성경에서 돈은 만 가지 악의 뿌리라 했는데 어찌 돈으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가 있을까요? 오직 죄사함과 구원은 우리의 영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만이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심을 새언약의 보혈로 하늘 가는 밝은 길을 허락하여 주신 아버지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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