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

전관예우를 받고 있는 사람들

전관예우(前官禮遇)란 전직 관리에 대한 예우를 말한다. 장관급 이상의 고위 관직에 있었던 사람이 직위에서 물러나더라도 재임 때와 같은 예우와 혜택을 누리게 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절차는 나라를 위해 평생을 일해온 노장에게 여생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당연한 처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전관예우에 대한 문제와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사람들의 반응도 좋지 못하다. 예우가 형평성에 어긋나거나 정도가 과하기 때문이다. 도의를 뛰어넘는 전관예우가 사회에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오죽하면 정치, 관료, 군대 등에 범죄조직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마피아’를 합성한 정피아, 관피아, 군피아 같은 신조어까지 등장했겠는가.

대개 전관예우의 혜택을 받는 자들은 그 위치에 맞는 전문성을 가지고 일을 해서 합당한 대가를 받기보다는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경영에 있어 전문성이 결여된 전관이 낙하산 인사로 중요한 자리를 꿰차고 월급만 받아가는 사례를 찾아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부당한 이익은 달콤한 유혹이겠지만, 비전문성과 부당한 이익은 결국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전관예우를 거부하신 분

반대로 전관예우를 거부하신 분이 계신다.

초림 예수님

에디토리얼[Dmitrydesign / Shutterstock.com]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9:6)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한 아기, 한 아들의 입장으로 오실 것을 예언했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다는 의미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이사야 53:2)

이 땅에 내려오신 하나님의 모습은 우리들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선지자 이사야(Isaiah)는 사람의 모습을 한 하나님에 대해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없고, 우리의 눈길을 끌 만한 매력이나 볼품이 없다고 설명했다.

약 700년 후 성경의 예언은 성취되었다. 한 아기, 한 아들의 모습으로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 즉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밝혔다(마태복음 1:18~21, 고린도전서 2:10~11).

하나님께서는 육체를 입고 오셔서 침례를 받으시고, 40일간의 금식 기도를 마치신 후 시험을 당하셨다. 그때 마귀는 부당한 이익을 권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마귀의 악한 유혹을 강하게 뿌리치셨다.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 마귀가 ···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마태복음 4:1~10)

하나님께서는 전관예우나 낙하산 인사 같은 비전문성, 묵인, 방관의 자세를 취하신 적이 없다. 말씀만으로도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으시지만 특권과 이익은커녕 오히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모진 고난과 고통으로 점철된 삶을 사시며 희생의 길을 걸으셨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에베소서 1:7)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9:16~17)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요한복음 19:30)

인류의 사망죄를 없애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희생의 길을 택하셨다(로마서 6:23). 얼마든지 편하게 구원을 완성시키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재림 예수님

재림 예수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고통의 삶을 또다시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두 번째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실 것을 예언했다. 하나님께서 다시 육체를 입으신다면 당연히 여인의 몸을 통해 아기로 탄생하실 것이다. 문제는 출생하실 가정이 어디겠느냐 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가정이겠는가. 신학자의 가정이겠는가. 아니면 이천 년 전처럼 초라한 환경과 가정에서 탄생하실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두 번째 오시는 하나님에 대해 “이적과 기사로 그분을 알아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성경은 마지막 시대에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이적과 기사를 통해 구원받을 백성들을 미혹할 것이라 기록하고 있다(마태복음 24:24, 데살로니가후서 2:9~12). 두 번째 오시는 하나님을 알아보는 증표는 따로 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이사야 25:6~9)

성경은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저장했던 포도주로 인류의 사망죄를 멸하실 것이라고 기록했다. 이 예언은 성취되었다. 사망을 멸하는 포도주, 즉 새 언약 유월절의 진리가 1600여 년 만에 안상홍님에 의해 개봉되었기 때문이다(마태복음 26:17~28). 즉 오랫동안 자취를 감춘 유월절 진리를 복구해 주신 안상홍님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우리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각 분야에서 전관예우로 인한 폐해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이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영화로운 영광의 보좌를 뒤로하시고 사람과 똑같은 모습으로 오셨다. 그리고 묵묵히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시며 초대교회의 진리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셨다.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릴 뿐이다.

<참고기사>
1. ‘월급만 받아간 ‘낙하산’ 관피아, 산피아, 조선업계 위기 수수방관’, 머니투데이, 2016. 6. 7.
2. ‘전관예우에 기울어진 法’, 아시아경제, 2016. 6. 21.

관련 글
댓글
  1. 강남콩

    우리들을 위해 가시밭길을 택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희생을 마음속에 다시 한번 새기고 갑니다.

  2. 학생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초림때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고 2번째 이 땅이 오셔서 희상하시고 새안약 진리를 하나씩 복구하여 주신 아버지 안상홍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3. 수민

    우리를 위해 다시 이 땅에 오신 하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4. 강남아롱별

    우리의 죄로 인해 이 땅까지 다시 오셔서 희생의 길을 걸어가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5. 솔방울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보여주신 희생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