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주는 성,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인가?

예루살렘과 하늘 예루살렘

1. 예루살렘의 뜻
2. 예루살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
 -제1성전(솔로몬 성전)
 -제2성전(스룹바벨 성전)
 -제3성전(헤롯 성전)
3.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성지
4. 하늘 예루살렘

 

예루살렘의 뜻

‘예루살렘’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누군가는 기독교의 성지를, 또 누군가는 유대교의 성지를, 다른 누군가는 이슬람교의 성지를 떠올릴 것이다. 어떤 이는 테러와 총격이 끊이지 않는 분쟁 지역을 떠올릴 것이다.

이스라엘 경찰-팔레스타인 시위대 충돌… 예루살렘서 300여명 부상

(한겨레, 2021.5.9.)

예루살렘 갈등: 국제사회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에 진정을 호소했다

(BBC NEWS, 2021.5.11.)

수천 년간 주인 바뀐 예루살렘… 분쟁의 문 다시 열리다

(시사저널e, 2017.12.9.)

유대·기독·이슬람교 성지 예루살렘…끊이지 않는 ‘피의 쳇바퀴’

(매일경제, 2017.12.7.)

현재 예루살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예루살렘’이라는 단어와 늘 따라다니는 키워드는 충돌, 부상, 사망, 테러, 전쟁, 총격, 폭력, 전투기 공습, 무장 경찰 등이다.

원래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마을’이라는 뜻의 예루샬라임(Yerushalayim)이다. 과연 전쟁과 보복으로 얼룩진 현재의 예루살렘을 평화의 마을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예루살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

성경에서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이 처음 나오는 곳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나는 대목이다. 성경에 따르면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살렘’을 다스렸다고 기록돼 있다(창세기 14:18). 살렘은 다름 아닌 예루살렘의 고대 명칭이다(시편 76:1~2).

이후 예루살렘을 통치했던 사람은 여부스 족속의 아도니세덱이었다. 그는 애굽에서 해방된 여호수아의 군대가 여리고 성과 아이 성, 그리고 군사력이 막강한 기브온을 점령하고 이들과 화친을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했다. 이에 아도니세덱은 다른 네 왕과 연합하여 여호수아와 화친을 맺은 기브온을 공격했지만 패했다. 결국 아도니세덱과 다른 네 명의 왕은 죽임을 당했다(여호수아 10:1~42).

그러면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 백성은 예루살렘을 완전히 차지했을까? 아니다. 이 지역 일대를 분배받은 유다 지파는 예루살렘성에 살던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다(여호수아 15:63). 이후에 베냐민 지파도 예루살렘에 자리잡은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 살았다(사사기 1:21). 때문에 예루살렘은 이때까지 ‘여부스’로 불렸다(사사기 19:10).

철옹성 여리고가 무너진 비결은?

 

제1성전(솔로몬 성전)

약 400년의 시간이 흘렀다.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은 다윗 왕 때 다시 시작되었다. 다윗은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중심지로 예루살렘을 지목했다. 다윗은 예루살렘에 사는 여부스를 포위하고 공격했다. 한편 여부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이 침공할 수 없을 만큼 튼튼하다고 생각하여 다윗을 조롱했지만, 결국 다윗에 의해 점령당했다(사무엘하 5:6~8).

여부스의 성 곧 예루살렘을 완전히 정복한 다윗은 이곳의 이름을 ‘다윗 성’으로 바꾸고, 밀로의 성벽을 개수하여 방비를 강화하고, 이곳에 왕궁을 세우고, 언약궤를 안치시켰다(사무엘하 5:9, 11, 6:12~15). 이후 북쪽에 있는 오르난(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을 구입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함으로써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중심지가 되어 가고 있었다(사무엘하 24:24~25, 역대상 22:1, 역대하 3:1).

다윗이 죽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솔로몬은 아버지의 숙원사업이었던 예루살렘 성전 건축에 착수했다. 그는 이스라엘 전국에 근로소집령을 내렸다. 소집에 응한 자는 30,000명이었다. 그 외에 운반만 하는 사람 70,000명, 돌을 깎는 사람 80,000명, 작업 반장 3,300명이었다. 총 18만 3,300명의 인원이 동원됐으며 7년의 공사 기간 끝에 성전이 준공되었다(열왕기상 5:13~16, 6:38). 준공된 예루살렘 성전은 고대 이스라엘 곧 유대인들의 삶과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은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분열되었지만, 예루살렘은 여전히 남 유다의 수도로 그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나 남과 북의 잦은 국경 전쟁과 외세의 침입으로 남 유다의 정세는 불안해졌고, 예루살렘도 약탈의 역사를 겪게 되었다.

(남 유다) 르호보암왕 5년에 이집트의 시삭왕이 예루살렘을 침략하여 성전과 궁전의 모든 보물과 솔로몬이 만든 금방패를 모조리 약탈해 갔다.

(현대인의성경 열왕기상 14:25~26)

(북 이스라엘 왕) 여호아스는 ··· (남 유다 왕) 아마샤를 생포하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 180미터에 달하는 성벽을 헐고 성전과 궁전의 모든 금과 은과 기구를 약탈한 다음 많은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 ··· 돌아갔다.

(현대인의성경 열왕기하 14:13~14)

예루살렘은 약탈되고 헐렸다. 그러나 이 상태로 계속 이어지진 않았다. 남 유다 왕 아마샤의 아들 웃시야가 성과 성벽 모퉁이에 망대를 세워 예루살렘을 한층 강화했고, 그의 아들 요담 왕도 성전의 윗문을 다시 세웠다. 또 히스기야 왕이 성벽 밖에 또다시 성벽을 쌓아 방비를 강화함으로 더 요새화되었다(역대하 27:3, 32:5). 그러나 예루살렘은 또 위기를 맞는다.

불타는 예루살렘 성전

BC 586년 바빌로니아 침공으로 불타는 예루살렘 성전(James Tissot 作)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왕 19년 5월 7일에 ··· 경호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와서 성전과 궁전에 불을 지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과 중요한 건물들을 다 태워 버렸으며 또 그의 부하들은 예루살렘의 성벽을 모조리 헐어 버렸다. ···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가고 ··· 이렇게 해서 유다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고국을 떠나게 되었다.

(현대인의성경 열왕기하 25:8~11, 21)

BC 586년 바벨론 나라는 유다 나라를 멸망시켰다. 유다 나라의 멸망은 곧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몰락으로 이어졌다.

사상 최악의 실수를 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제2성전(스룹바벨 성전)

약 70년이 흘렀다. 어찌된 일인지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폐허가 된 성전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페르시아 왕 키루스(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하고 바벨론의 포로였던 유다 백성의 귀환과 성전 건축을 허락했기 때문이다(에스라 1:1~7).

이에 본토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이듬해부터 성전 건축 공사를 시작했다. 스룹바벨(Zerubbabl)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스룹바벨 성전’으로도 불린다. 성경은 당시의 상황을 “모든 백성들이 성전의 기초를 놓은 것을 보고 여호와를 찬양했다. 나이 든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은 큰 소리로 울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솔로몬 왕 때에 처음 지었던 아름다운 성전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했다(에스라 3:11~13).

성전을 건축하는 일은 순탄치 않았다. 유다 백성이 포로로 잡혀있는 동안 예루살렘에 정착한 이방인들의 지속적인 방해가 있었기 때문이다(에스라 4:11~16). 이에 약 14년 동안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다시 재개되었다(학개 1:13~15, 스가랴 4:6~10).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오(다리우스) 왕의 금전적인 도움과 후원으로 드디어 예루살렘 성전은 BC 516년경에 완공되었다(에스라 6:1~14). 유다 백성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봉헌식을 거행했으며 유월절 등의 하나님의 절기를 지켰다(에스라 6:16~22).

그러나 이후에 예루살렘 성벽은 또 무너져 불타버렸고, 페르시아의 왕 아닥사스다의 도움으로 성벽이 재건되었다. 이렇듯 예루살렘은 불타고 재건되고 불타고 재건되는 등의 역사를 반복했다(느헤미야 2:1~6:15).

그러던 BC 175년 셀리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가 즉위하여 이후 팔레스타인을 수중에 넣었다. 『이스라엘사』에 따르면 안티오코스 4세는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 성전을 약탈한 뒤, 성전에 제우스를 위한 제단과 신상을 세우고 유대인에게 헬라 신앙을 강요했다고 설명한다. 이에 유다 마카베오를 중심으로 많은 유대인들이 혁명을 일으켰고, 투쟁 끝인 BC 164년경에 예루살렘을 탈환하는데 성공한 유대인들은 제우스 신상을 제거하고 성전을 정화했다. 그러나 이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BC 63년경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Pompey)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은 또 파괴되고 말았다.

 

제3성전(헤롯 성전)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한 사람은 헤롯이었다. 헤롯은 이방인 이두메(에돔) 출신으로 로마 권력층의 비호를 받아 갈릴리를 통치했다. 그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BC 20년경부터 성전을 확장 재건축하기 시작했다. 성전은 웅대하고 화려했다. 『라이프성경사전』은 헤롯 성전에 대해 “성전 공사에 사용된 돌의 크기나 대리석의 아름다움은 당시 건축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리석의 높이는 평균 90-120㎝나 되었고, 어떤 것은 돌 하나의 길이가 12m이며 무게가 100t이나 되는 것도 있었다. 유대 랍비들은 ‘이 성전을 보지 못한 자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고까지 극찬하였다”고 설명했다.

유대 전쟁사1』 역시 “헤롯은 성벽을 확장하여 과거보다 두 배나 넓은 지역을 성벽으로 둘렀고, 엄청난 비용을 들였고, 과도하리만큼 화려하게 지었다”고 설명했다. 성경 마가복음에는 성전을 본 한 제자가 예수님께 “선생님, 정말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하고 대화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성전의 모습이 감탄할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것이다(마가복음 13:1).

성전은 당시 유대인 종교의 구심점으로써, 유대인들은 이곳에서 전례행사를 진행했고, 유대 최고 법정이었던 산헤드린도 이곳에서 열렸다(요한복음 2:13~15). 예수께서는 이곳에서 새 언약 복음을 전파하셨고, 많은 이적을 행하셨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예루살렘에 머무르며 오순절 이른 비 성령을 받았다. 이렇듯 초대교회의 배경이 되는 예루살렘 성전은 기원전 20년경에 착공해 헤롯 사후인 기원후 64년경에 완공되었다.

그러나 완공된 지 불과 수년 후에 성전은 또다시 로마 디도(Titus) 장군에 의해 함락되어 불타고 만다. 유대인들이 로마에 저항하며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포위와 파괴

AD 70년 디도의 지휘 하에 있는 로마군에 의한 예루살렘의 포위와 파괴(David Roberts 作)

로마 병사들은 성전 문에 불을 질렀다. ··· 성전이 불타는 동안 로마군은 손에 닿는 것을 모조리 약탈하고 많은 유대인들을 살해했다. ··· 사방으로 번져가는 무서운 불길에 죽어가는 자들의 신음소리가 뒤섞였다. 높은 산 위에 있던 거대한 성전 건물이 불타고 ··· 성전에 세워진 언덕은 바닥에서부터 온통 불덩이로 변해 있었고 곳곳에 화염이 치솟고 있었다. ··· 로마군은 예루살렘 외곽지역에까지 불을 지르고 성벽을 무너뜨렸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2』, P. 223~246)

철저히 무너져서 이곳이 [예루살렘]이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는 걸 믿게 하는 것들이 남지 않았다. … 대단히 장엄하며 모든 인류에 있어 위대했던 도시, 예루살렘의 종말이었다.

(Josephus, 『BJ』, 번역 Whiston, William. 7.1.1)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역사와 함께 불타버렸다. 예루살렘의 역사는 전쟁과 피와 화염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끊이지 않는 피의 쳇바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새 언약, 그 특별한 진리에 대하여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성지

주후 70년 로마에 멸망당한 이스라엘 땅은 로마, 비잔티움, 무슬림, 오스만 튀르크 등이 지배했다. 주권을 완전히 빼앗긴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쫓겨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떠돌아다니는 유랑민 신세가 되었다.

그러던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 이후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1948년 5월 14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국가가 세워진 것이다.

유대 민족의 역사적 권리와 국제연합 결의에 따라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를 수립하고 이를 이스라엘이라고 부를 것을 선포한다.

(1948년 5월 14일 벤구리온 수상의 이스라엘 독립선언문 낭독)

이날 밤 제1차 중동 전쟁이 발발했다. 당시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었던 아랍인들이 이스라엘의 국가 건국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 결과 예루살렘은 동(東)과 서(西)로 분리되었다. 유서 깊은 성지가 있는 동예루살렘은 요르단이,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차지하였다.

1967년 전쟁은 또 일어났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전쟁이었다. 전쟁은 시리이와 요르단으로 확대되었다. 기습 공격에 성공한 이스라엘은 단 6일 만에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세 나라를 차례로 격파했다. 대승을 거둔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까지 점령했고, 1980년 7월에 ‘예루살렘은 분리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로 규정한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 관한 기본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했다.

국제사회는 예루살렘을 동(東)과 서(西)로 분열된 지역으로 보고 있다.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의 수도로,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예루살렘은 결코 분할되거나 공유될 수 없는 곳이라고 강조하며, 동예루살렘에 유대인 정착촌을 지속적으로 건설해왔다.

2021년 5월 18일자 BBC NEWS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한 결과 현재 유대인 60만 명이 동예루살렘에 살고 있다.”며 “팔레스타인 측에선 유대인의 동예루살렘 정착은 국제법상 불법이라고 말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예루살렘 수도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루살렘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성지이자 민족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주요 성지가 몰려있는 동예루살렘 전경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주요 성지가 몰려있는 동예루살렘 전경

예루살렘 올리브 산에 있는 구시가지의 성전산 모습이다. 정면에 벽 하나가 보인다. 유대인들이 성지로 여기는 ‘통곡의 벽‘이다. 유대인들은 이 벽이 3000년 전 솔로몬 왕이 건립한 제1성전과 이후 들어선 2성전이 있었던 곳이라고 믿고 있다. 이곳은 유대인들에게 정신적인 구심점이자 종교적인 심장에 해당한다.

문제는 아랍인들에게도 이곳은 중요한 성지다. ‘통곡의 벽’과 맞닿은 ‘황금빛 돔’과 ‘회색 돔’이 그것이다. 황금빛 돔은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이라 불리고, 회색 돔은 ‘알 아크사 모스크(Al-Aqsa Mosque)’라고 불린다.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천마를 타고 날아와 승천했다고 알려진 곳이다. 638년 아랍의 이슬람교인들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뒤 사원을 세우고 사원이 완공되면서 이곳은 이슬람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성지가 되었다.

기독교 입장에서도 예루살렘은 매우 중요한 성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신 곳, 십자가를 지신 곳,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신 곳 등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고난이 묻어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예루살렘은 3개 종교의 성지들이 밀집된 공간이다. 3개 종교의 성지가 모인 예루살렘은 다른 어떤 곳보다 사랑과 평화가 넘쳐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유대인들이 이슬람교의 ··· 성지인 알 아크사 사원에 진입하는 것을 막겠다고 사원에 모였다. ··· 돌팔매질하는 시위대에 이스라엘 경찰이 최루가스와 섬광탄, 고무탄으로 응수하면서 사원 경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 이날 충돌로 최소 305명이 부상했고 ··· 이런 가운데 ··· 무장 정파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 최후통첩성 경고를 보내고 수십 발의 로켓포 공격을 가했다. ··· 이스라엘도 곧바로 ··· 보복 공습을 감행했다. ··· 화재가 발생하고 ···

(‘3대 종교 성지 동예루살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충돌로 300여명부상’, 중앙일보, 2021. 5. 11.)

이스라엘의 전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예루살렘은 과거에도, 앞으로도 우리의 것이고, 결코 나누어지거나 분리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팔레스타인은 “예루살렘은 우리가 꿈꾸는 독립국의 수도”라며 “우리의 목적이 달성되고 우리의 성지에 대한 점령이 끝날 때까지 저항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독교에서도 예루살렘은 ‘세계의 배꼽’이라 불렸던 만큼 이곳을 신성하게 여기고 있다. 종합경제 일간 신문 ‘아시아경제’에 따르면 200년에 걸친 십자군 원정이 실패로 끝난 이후에도 유럽 각국이 중동 정세에 개입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성지 예루살렘 회복에 대한 종교적 염원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예나 지금이나 예루살렘은 갈등, 분쟁, 충돌, 전쟁의 중심에 있다. 예루살렘은 로마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동안 여러 종교와 여러 민족이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격전장이다. 그런데 성경은 예루살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예루살렘에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겠다. ···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겠다.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을 것이다. 너희가 ··· 기뻐할 것이며 (쉬운성경 이사야 66:12~14)

성경 ‘이사야서’에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고 그 마음이 기뻐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분명한 점은 총성 소리, 총을 맨 10대 소녀, 기관단총을 맞아 사살된 남성, 전쟁과 피의 보복으로 얼룩진 지금의 예루살렘은 평화와 위로, 기쁨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더구나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돌 하나도 제대로 남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누가복음 21:6, 마가복음 13:2, 마태복음 24:2). 팔레스타인에 위치한 예루살렘이 무너져 내려 황폐하게 될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 처참하게 무너진 곳에서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며, 전쟁이 진행 중인 곳에서 어떻게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있을까.

놀랍게도 성경은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과 대조되는 다른 예루살렘이 존재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늘 예루살렘

지금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과 같습니다. ··· 그러나 위에 있는 하늘의 예루살렘은 자유스러운 여자와 같습니다. 그는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쉬운성경 갈라디아서 4:25~26)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팔레스타인(중동)의 예루살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예루살렘 곧 하늘의 예루살렘이 존재한다. 하늘의 예루살렘은 곧 우리의 어머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대인의성경에는 ‘예루살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NIV 성경에도 “Jerusalem that is above is free, and she is our mother”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에는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의 존재가 ‘신부’로 표현되어 있다(요한계시록 21:9~10). 신부라는 단어는 혼인잔치가 열릴 때 사용한다. 혼인잔치에서 어머니가 신부라면 신랑은 누구일까. 당연히 아버지다. 신랑과 신부가 초대한 사람들은 손님이다.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천국 혼인잔치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신 적이 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가리켜 ‘혼인집 신랑’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리고 곁에 있던 제자들을 가리켜 ‘혼인집 손님들’이라고 표현하셨다(마가복음 2:18~20). 손님은 신부가 아니다. 즉 혼인집 손님인 성도들은 신부가 아니다. 이는 곧 신부로 표현된 하늘 예루살렘은 성도들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성경 『갈라디아서』에는 하늘 예루살렘을 가리켜 성도들이 아닌, 성도들의 어머니라고 기록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하고 참되다(요한계시록 21:5).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계획하신 것을 그대로 실행하고, 당신이 뜻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겠다고 말씀하셨다(이사야 14:24). 하늘 예루살렘이 이 땅에 내려온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다. 반드시 실행되고 이루어진다.

오늘날 인류가 주목해야 할 곳은 충돌, 테러, 총격, 폭력, 분열, 갈등이 진행 중인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이 아니라 성도들의 어머니인 하늘 예루살렘이다.

<참고자료>
1. ‘동예루살렘서 하마스 대원이 총격…1명 사망·3명 부상’, 매일경제, 2021. 11.21.
2. ‘예루살렘’, 두란노사전
3. ‘헬레니즘에 저항한 유다 마카베오’, 매일신문, 2013. 11. 21.
4.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이들이 싸우는 이유’, BBC NEWS, 2021. 5. 18.
5. ‘이스라엘에서는 왜 ‘서예루살렘’이란 말이 금기어가 됐을까?’, 아시아경제, 2017. 12. 5.
6. ‘유대·기독·이슬람교 성지 예루살렘…끊이지 않는 ‘피의 쳇바퀴”, 매일경제, 2017. 12. 7.
7.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예루살렘전기』, 시공사
8.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모두의 성지, 예루살렘’, 중앙일보, 2017. 12. 11.
9. ‘탐욕의 그림자 짙은 예루살렘’, 경향신문, 2010. 9. 30.
10. ‘3대 종교 성지 동예루살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충돌로 300여명부상’, 중앙일보, 2021. 5. 11.
11. ‘동예루살렘서 하마스 대원이 총격…1명 사망·3명 부상’, 매일경제, 2021. 11. 21.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와 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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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thoughts on “평화를 주는 성,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인가?”

  1. 성경 깊숙한 내용까지 총 망라해서 하늘 예루살렘의 비밀을 풀어주시니 신기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땅의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포하자 지금 중동은 전쟁의 기운이 터지기 일보 직전 같습니다
    예루살렘은 분명 평화의 도시인데 평화라고는 도무지 찾아볼수 없는 종교의 분쟁지 중동의 예루살렘
    성경의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은 정말 하늘 예루살렘을 대입해야 맞는것 같습니다

  2. 하늘에 계셔야 할 하늘 어머니께서 우리때문에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해주시려고 모든 것을 다 버리시고 이 땅까지 내려오신 하늘어머니의 위대하신 희생과 사랑에 감사드리며 약속의 자손으로 삼아주신 은혜에 무한 감사드립니다.

  3. 우리들에게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는 영생을 주시는 분은 새예루살렘 어머니시다. 그러므로 새예루살렘 어머니를 반드시 믿는 자녀가 되어야한다.

  4.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크신 희생에 어머니를 영접할 수 있었고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늘어머니께 진정 무한한 감사를 돌립니다

  5. Evangelista do brasil

    히브리서에 나오는 예루살렘에서 장자들의 총회가 열린다는 대목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성이라고만 착각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어머니의 품 안으로 모이듯 저 영원한 천국에서도 어머니 품 안에서 영원한 희락을 누릴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하늘 장자를 찾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6. 해뜨는 강릉

    땅의 예루살렘에서는 물이 나지 않아
    기혼샘에서 물을 끌어와(히스기야 터널)
    실로암에서 물을 길어 먹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땅의 예루살렘은
    생명수의 근원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죄를 씻어주시고
    생명 주시러 이 땅에 내려오신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 사랑과 희생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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