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영혼

영화 '사랑과 영혼'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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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영혼, 1990년에 개봉한 영화로 전 세계에서 대히트를 쳤다. 북미에서만 제작비 열 배에 달하는 흥행에 성공했고, 한국에서도 350만 관객을 동원하여 당시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사랑과 영혼이라는 작품 속에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라는 인간의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문제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영화 ‘사랑과 영혼’이 주는 의문

사랑과 영혼의 줄거리는 이렇다. 성공한 젊은 금융가 샘과 도예가인 몰리는 뉴욕 맨해튼의 아파트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곧 불행이 찾아왔다. 샘이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괴한의 습격을 받은 몰리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대항하다 벌어진 일이었다. 몰리는 샘을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죽음은 그토록 잔인하게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혼자가 된 몰리는 그리움에 슬픈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샘을 그리워하던 몰리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다. 사기꾼 영매술사 오다메였다. 오다메는 그녀에게 믿기지 않는 말을 했다. 그녀를 만나러 온 샘, 즉 샘의 영혼에 대한 것이었다. 그녀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오다메가 그녀와 샘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쏟아내면서 문득 깨달았다. 샘의 영혼이 자신의 주위를 맴돌고 있음을 말이다.

전반부의 안타까움이 절정에 다다를 즈음 몰리는 결국 샘을 만나게 된다. 오다메의 육체 속에 들어간 샘의 영혼과의 재회는 보는 이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영화는 육체의 죽음을 맞은 샘이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는 ‘사랑과 영혼’이라는 작품에서 차마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날 수 없었던 샘의 영혼이 던지는 메시지보다 ‘사람에게 과연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할까’라는 의문을 더 가지게 된다.

과연 영혼은 존재할까. 영화에서 샘의 영혼은 몸을 벗어나 활동하며,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존재로 설명된다. 물론 영화는 픽션(fiction)이다. 그러나 영화의 소재인 영혼은 논픽션(nonfiction)이다.

사람의 영혼은 존재하는가

영혼에 대한 문제는 종교를 떠나 오랜 세월 회자되고 있다. 영혼 존재에 대한 갑론을박은 결론 없이 이어진다.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많다. 겨울이면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동장군이 몰고 오는 찬바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손바닥에 득실대는 세균들이 그것이다. 인간이 가진 시력으로는 그 유무를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들의 존재를 증상이나 증거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인플루엔자의 증상은 열과 몸살, 기침 등이 있으며, 동장군이 몰고 오는 찬바람 또한 피부로 그 증거를 체감할 수 있다. 손의 세균은 현미경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영혼의 존재는 어떤 증거로 확인할 수 있을까.

영화 ‘사랑과 영혼’이 주는 의문에 대한 해답

사람의 영혼이 존재한다는 증거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세기 2:7)

생령이란 ‘산 영혼’, ‘산 생명’이란 뜻이다. 흙이라는 육체 속에 하나님의 생기(영혼)로 사람이 창조됐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살아 있는 사람 모두에게는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살아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영혼의 존재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숨쉬고, 먹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모든 것, 그것이 바로 사람 속에 영혼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마치 사랑과 영혼에서 샘의 영혼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자. 사람의 몸속에 영혼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열왕기상 17:22)

이 내용은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사르밧 지역에 사는 한 과부를 만나 그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장면이다. 이때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이의 영혼을 몸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빠져나온 영혼을 아이의 몸으로 돌려보내 살아나게 하셨다. 즉 영혼이 몸과 분리되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몸에 영혼이 없다는 것 자체가 죽었음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성경에서는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돌아간다’는 표현에 내재된 영혼의 존재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서 12:7)

‘돌아간다’는 의미는 ‘왔던 곳으로 다시 감’을 뜻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집에서 나와 학교로 간 아이가 하교 후에 돌아간다면 어디로 갈까. 다시 집으로 가야 ‘돌아간다’는 말이 성립된다. 만약 아이가 하교 후 도서관에 들른다면 이는 ‘돌아간다’는 표현을 쓸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죽게 되면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하셨다. 육체는 흙에서 왔기에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에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 살아 있던 사람은, 수명을 다한 후 영혼과 육체의 분리로 죽게 된다. 이와 관련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는 습관이 하나 있다. 예로부터 사람의 죽음에 대해 ‘돌아가셨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이 육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메커니즘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인류는 옷을 지어 입기 시작했다. 옷은 유구한 역사 속에 변화를 거듭해갔다. 그리고 명품이라는 브랜드 속에서 고가의 제품으로 태어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 옷이 몸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옷이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벗어놓으면 그 자리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의 몸이 이와 같다. 영혼에서 탈피된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마치 벗어놓은 옷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존재가 영혼이 떠난 몸이다. 옷보다 몸이 중요하듯 육체보다 영혼이 더 중요한 것이다.

영혼은 존재한다. 그 존재를 믿을지 말지는 각자에게 달렸다. ‘사랑과 영혼’의 몰리처럼 말이다.

댓글
  1. 단감

    어제도 동네엄마와 차를 마시면서 영혼이 있을까? 없을까?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것 같다. 하지만 영혼은 존재하고 영혼의 세계가 있음을 이글을 통해서 또한 영화를 통해서 나는 간접적으로 느끼고 영혼의 세계가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 도서관 사서

    보이지 않기에 믿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영혼이죠….
    하지만 보이지 않아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 바로 영혼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영혼의 존재를 설명하고 있으니까요.

  3. 유나이티드

    사람으 영혼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4. 지은

    벗어놓은 옷!!! 공감 100입니다

  5. 비타1004

    영혼은 반드시 존재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신 하늘아버지 어머니의 은헤에 감사드립니다.

  6. 아랑나랑

    육체는 영문성경에 ‘텐트’ 임시있는 집이라고 나오는 것을 통해서도 우리의 본질적 생명이 영혼에 있음을 깨달아야 현세 기복적인 신앙을 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요~~

  7. 문햇살

    영혼문제에는 믿을 수밖에 없는 증거들로 가득하군요

  8. 강남 아롱별

    영혼의 존재가 확실합니다 영혼이있다는 것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9. 학생

    영혼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에 영혼의 존재를 믿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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