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헌군주제와 유대인

입헌군주제(立憲君主制)를 가장 먼저 도입한 나라를 흔히 영국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를 보면 이미 최초의 유대인 왕국이었던 통일 이스라엘 시대에 입헌군주제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통일 이스라엘 왕국은 초대 왕인 사울이 BC 1030년경에 즉위하면서 시작된 나라다. 어떻게 이 시기에 이런 근대적인 정치 제도를 실시할 수 있었을까?

입헌군주제

입헌군주제는 절대군주제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군주가 헌법에서 정한 제한된 권력을 가지고 다스리는 정치 체제’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나라들은 강력한 권한을 가진 한 명의 군주에 의해 통치되어왔다. 그러나 시민계급이 성장하면서 권력의 분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그 결과 영국에서 이 근대적인 제도가 가장 먼저 확립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왕과 입헌군주제

이스라엘의 왕과 입헌군주제. 언뜻 생각하기에는 이 두 단어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왕은 모두가 흔히 알고 있는 왕과 조금 거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신명기 17:18~19)

이스라엘의 왕에게는 정치력, 군사력보다 더 중요시되는 덕목이 있었다. 언제나 하나님의 율법을 가까이에 두고 지키는지의 여부였다. 쉽게 말해 하나님께서 정한 법대로 통치하는 왕이 훌륭한 왕이었다는 뜻이다. 당시 거의 모든 나라들의 왕은 절대적인 권력을 누렸고 왕의 말이 곧 법이었다. 왕은 제사장의 역할을 겸하며 백성들이 자신의 말을 신의 뜻처럼 여기게끔 했다. 종교는 일종의 정치적 도구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달랐다. 왕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 중 하나에 불과했다. 옳지 않은 선택을 했을 때는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에게 질책을 듣고 뜻을 돌이키기도 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일종의 헌법이 왕의 권한을 어느 정도 제한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기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겼던 왕은 여러 위기에 봉착했었고, 하나님을 많이 의지했던 왕은 실제로 나라를 잘 통치하며 평화를 누렸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다윗과 사울이다.

비참한 말로를 맞은 왕, 사울

사울(Saul)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다. 왕이 되기 전에는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했지만 그의 충성심은 오래 가지 못했다. 중요한 순간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의 충고를 무시함으로 여러 차례 책망을 받았고, 결국 블레셋과의 전쟁 중에 부상을 입어 비참하고 치욕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사무엘상 13:1~23, 15:1~31, 31:1~13).

입헌군주제 이스라엘 왕 다윗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이끈 왕, 다윗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이끈 왕, 다윗

다윗(David)은 사울과 반대되는 인물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서 30세에 왕이 되어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의 재위 기간에 이스라엘은 큰 전성기를 맞았다. 다윗은 이새(Jesse)의 여덟째이자 막내아들이다. 이스라엘의 사사(士師)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을 받아 사울 대신 왕이 될 자를 찾기 위해 이새에게 온 일이 있었다. 이새의 아들 중에 왕이 될 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때 이새는 다윗을 그 자리에 부르지 않고 양떼를 지키도록 했다. 이새가 다윗을 얼마나 연약하게 여겼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택하셨다. 성경에는 그 이유에 대해 “다윗의 중심을 보셨다”고 기록되어 있다(사무엘상 16:7). 실제로 구약성경의 19번째에 수록된 시편(Psalms)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그의 마음이 담긴 시가(詩歌)들이 많다. 또한 그는, 자신은 백향목(栢香木, cedar) 궁궐에 살면서 하나님을 모시는 장소는 천막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며 성전 건축을 계획하기도 했다(사무엘하 7:1~3).

그래서였을까. 다윗은 블레셋과 암몬 등 주변의 수많은 족속들을 쳐서 굴복시켰고 전쟁을 치르는 족족 승승장구했다. 많은 이민족들은 다윗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을 두려워했고 평화만이 지속되었다(사무엘하 5:17~25, 10:1~19). 하나님의 뜻을 잘 따랐던 왕과 그렇지 못했던 왕은 이토록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신앙과 입헌군주제의 절묘한 조화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강력한 법령이 있다. 율법 안에는 인간이 꼭 지켜야 할 조항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집대성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주목해봐야 할 부분은 법의 존재 여부보다 법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당시 이스라엘의 주변국들도 나름의 법을 가지고 있었지만 법보다는 왕의 뜻이 우선이었다. 주변국과 달리 이스라엘의 왕들이 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이유는 ‘정말로’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확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법을 단순히 사람이 만든 규칙 정도로 생각하는 것과, 언제 어디서든 나를 지켜볼 수 있는 존재의 엄명(嚴命)이라 여기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결국 군주가 하나님의 법을 절대적으로 여기고 그 법을 따르기 위해 노력한 결과 ‘신앙적 입헌군주제’라는 특이한 형태의 조화가 탄생했다고 보인다. 군주가 제왕적이고 독선적인 리더십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따르려는 마음을 가졌을 때, 오히려 나라가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역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스라엘 왕국, 유대인 그리고 또 다른 유대인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사후에 이스라엘 왕국은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분열되었다. 앗수르에 의해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당하자, 여전히 존속하고 있던 ‘유다(Judea)’라는 국명은 이스라엘 민족을 부르는 새로운 이름이 되었다. 유다 왕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후로도 유대(Judea)인은 여전히 남아 오늘날까지 그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면적 유대인

그러나 성경은 겉으로 보이는 유대인 외에 또 다른 유대인이 존재한다고 일러주고 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로마서 2:28~29)

이스라엘에서 나고 자란 자만 유대인이 아니고 그 혈통을 물려받은 자만 유대인이 아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면적(裏面的) 유대인이 존재한다. 그들은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다(요한복음 1:12~13).

왕이 되기 위한 과정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 즉 후사(後嗣)로 살아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 교훈한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로마서 8:17)

왜 그러한 과정을 겪어야 하는지 의문을 갖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왕 같은 제사장’, ‘세세토록 왕노릇한다’는 표현도 존재하는 것을 볼 때, 이면적 유대인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차후에 왕 같은 위치에 오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베드로전서 2:9, 요한계시록 22:5). 이면적 유대인들은 현재 후사의 입장으로, 천국에서 왕으로 살기 위한 수업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왕 같은 제사장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앞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훌륭한 왕은 하나님을 잘 따르는 왕이었다. 훌륭한 이면적 유대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잘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 구원받을 성도들은 하나님이 어디로 인도하시든 따르는 자들이다(요한계시록 14:1~5).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여기며 순종해야 진정한 이면적 유대인이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법을 절대적으로 여기는 기독교인이 되자

입헌군주제 예수님 최후의 만찬
최후의 만찬 [Renata Sedmakova / Shutterstock.com]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다(디모데후서 3:15~17). 하나님의 법 안에서 ‘신앙적 입헌군주제’를 연습하며 살아가는 기독교인들로서는 성경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여길 필요가 있다.

오늘날 바다의 모래처럼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존재하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잘 따르고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새 언약을 세워주셨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목숨을 바쳐 그 계명을 지켰건만 작금의 기독교인들은 그 절기의 중요성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가. 성경을 진정 하나님의 말씀이라 여긴다면, 진정 자신이 이면적 유대인이라 자부한다면 예수님과 사도들의 본을 기쁨으로 따라야 함이 마땅하다. 하나님께서 왜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칭하셨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사무엘상 13:13~14, 사도행전 13:22).

성경의 모든 말씀을 절대적으로 생각하며 순종으로 따르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계명을 정금처럼 여기는 자들을 후사로 삼으시고, ‘신앙적 입헌군주제’에 따라 우주를 통치할 축복을 주실 것이다.

댓글 1
  1. 비타1004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가운데 고통과 고난이 있겠지만 이 모두가 우리를 천국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주시기 위한 하나의 숙제임을 잊지말아야합니다.그래서 어떤 고난이라도 이기고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천국의 유업을 물려받을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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