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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식민지 정책

식민지

1. 식민지 역사
2. 일본의 식민지 정책
3. 사단의 식민지 정책

 

식민지 역사

식민지(植民地, colony)란 한 나라의 주권이 다른 나라에 넘어간 상태, 즉 지배를 받는 지역을 가리킨다. 그러나 원래 식민지의 어원은 라틴어의 ‘콜로니아’인데 이는 ‘민족이나 국민의 일부가 오래 거주하던 땅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여 건설한 지역’을 뜻했다.

고대에는 이주식민지(移住植民地)의 형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본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새로운 땅에서 토지를 개간하고 경작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B.C. 8~6세기경 페니키아인과 그리스인이 지중해 연안 각지에 개척한 식민지, 중국의 화교(華僑)가 만든 차이나타운이라는 이름의 중국 이주민사회, 신라인들이 중국의 동해안 일대에 만든 신라방(新羅坊) 등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타국에 지배되어 착취를 당하는 지역’으로 그 개념이 바뀌었다. 식민지의 형태가 착취(搾取)로 바뀐 건 15세기 말이었다. 1520년 포르투갈은 인도양의 무역을 독점했고, 신대륙에서는 브라질을, 아시아에서는 필리핀을 복종시켰다. 17~18세기에는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무역과 항해의 독점, 식민지의 쟁탈을 둘러싸고 맹렬하게 전쟁을 벌였다. 최후의 승자로 남은 영국은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식민지를 약탈하여 식민지제국을 건설했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주권을 완전히 빼앗겼던 적이 있었다.

 

일본의 식민지 정책

1910년 한일병합조약 이후, 한국은 일본에게 나라를 점령당했다. 일본은 한국을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지배할 것’을 천명하면서, 한국을 무너뜨리기 위한 식민지 정책으로 ‘무단통치’와 ‘문화통치’를 펼쳤다.

무단통치는 무력에 의한 강경책으로 ‘채찍’에 해당했다. 일제는 「총포급화약류단속법」을 강화하여 한국민족이 무기를 가질 수 없도록 규제했다. 심지어 엽총소유도 엄금했다. 이를 위반하는 자는 가혹하게 처벌되었다. 한국인들은 완전무장해제당한 것이다. 이러한 지배체재 속에서 헌병은 전국 각지에 파견되어 한국인의 일상을 통제하고 탄압하고 지배했다. 헌병은 정식재판 없이 한국인들에게 벌금을 물었고, 헌병경찰의 기분에 거슬리거나 공손하지 않으면 태형을 가했다. 또한 한국인들을 강제로 끌고가 고문하여 죄를 날조하기도 했다. 강제와 억압, 무력을 통해 한국인의 저항과 독립운동 의지를 말살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에 독립운동가, 애국 계몽 운동가, 무장투쟁 운동가, 의병 등 많은 반일제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채찍에 해당하는 무단통치로는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막을 수 없었다. 때문에 일본은 회유책으로 문화통치라는 ‘당근’을 사용했다. 문화통치는 한국의 문화를 발달시킨다는 명목으로 내세웠다. 교육, 산업, 교통행정의 개선과 언론, 집회, 출판의 자유를 인정하고 한국의 문화를 존중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통치는 무단통치와 본질상 다르지 않았다. 궁극적 목적은 민족을 분열시키고 친일파 세력을 양성시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채찍은 대한민국을 흔들지 못했지만 당근은 했다. 일본의 무단통치 당시 한국인은 굴복하지 않고 단결하여 3.1운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문화통치 때에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의 편에 섰고, 지식인들이 변절했고, 친일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민족이 분열됐다. 문화통치는 한국인을 골수까지 일본인으로 만드는 고도의 식민지 정책이었던 것이다.

 

사단의 식민지 정책

교회 안에도 동일한 역사가 일어났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언약을 유언으로 남겨주셨다.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 내가 (십자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 잔(포도주)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14~20)

이날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기 전날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으심을 미리 알고 계신 가운데, 열두 제자들과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 먹기를 간절히 원하였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곤 유월절의 떡이 당신의 살이고, 유월절의 포도주가 당신의 피라고 선언하셨다. 피 없이는 정결함을 받을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짐승의 피가 아닌 당신이 십자가에서 흘리실 피로 인류에게 죄 사함을 주시고자 하셨다. 그리고 유월절에 먹는 포도주를 당신이 십자가에서 흘릴 희생의 피라고 언약하셨다(마태복음 26:19~28).

예수님 십자가 이후에도, 초대교회 성도들은 새 언약의 예법대로 유월절에 떡과 포도주를 떼며 예배함으로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했다(고린도전서 11:23~27). 그러나 예수님의 뜻을 굳게 지키던 믿음의 선진들이 운명한 이후, 새 언약의 진리를 무너뜨리기 위한 무단통치와 문화통치가 로마에서 시작됐다.

로마의 무단통치는 악랄했다. 64년 네로 황제가 로마 대화재 사건의 책임을 그리스도인에게 전가하여, 그리스도인들을 화형시키거나 사자의 밥으로 던졌다. 이후 도미티아누스, 트라야누스, 디키우스, 바렐리아누스, 디오클레티아우스 등의 로마 황제 때에도 박해가 이어졌다. 교회사 핸드북에 따르면, 로마 황제들은 기독교인들 때문에 질병, 흉년, 지진 등의 천재지변이 일어난다는 죄명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살해했다고 기록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가 죄목이 되었던 것이다.

만약 티베르 강이 성벽에 이르거나, 나일 강이 들판에까지 도달하지 못하거나, 하늘이 움직이지 않거나 혹은 땅이 움직이거나 기근이 있거나 역병이 있으면 곧 외치는 소리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을 사자에게 던져라!’

(교회사 핸드북, 생명의말씀사 P. 71~72)

로마는 그리스도교 근절을 위한 국법을 반포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체포하여 고문했고 야만적인 방법으로 죽였다. 그러나 심한 박해의 시기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는 꾸준히 성장했다. 오히려 복음의 불꽃은 더 밝게 타올랐다. 그리스도인들은 순교를 당할지언정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진리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문화정치 때는 달랐다. 문화정치는 그리스도인을 인정하고 자유를 준다는 명목으로 진행됐다. 간추린 교회사 등 여러 자료에 따르면,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313년 밀라노칙령(Edict of Milan)을 반포하여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공식적인 종교로 승인했다. 교회와 성직자들에게 세금과 병역 의무를 면제해 주었고, 몰수한 재산을 반환하였다. 제국의 고위행정직에 기독교인들을 배치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본보이신 예배일 대신 이교의 교리를 따르도록 했다.

321년에 콘스탄틴이 일주간의 첫 날(일요일)을 휴일로 정했을 때 그는 그날을 “태양의 숭배일(Sunday)”라고 명명했다. ··· 기독교회는 많은 이방 사상과 상징을 받아들였다. 예를 들면 태양 숭배로부터 예수의 탄생일이 태양제의날인 12월 25일로 정해지게 되었다.

(교회사 핸드북, 생명의말씀사, P. 131)

콘스탄티누스는 여러 특권을 교회에 제시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알려주신 계명 대신 태양신 숭배일을 지키도록 종용했다. 그의 당근정책은 대성공이었다. 로마교회는 황제의 명대로 그리스도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이 만든 계명을 지켰다. 급기야 325년에는 예수님께서 희생의 피로 언약하신 유월절 새 언약을 폐지했다. 박해가 심했던 당시에는 예수님의 진리와 믿음을 지키기 위해 로마와의 타협을 완강히 거부했던 교회가, 황제의 공인 이후 특권이 가해지자 진리를 지키며 순교까지 감행했던 신앙 정신을 변절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로마의 문화정치는 그리스도인의 정신을 빼앗고 껍데기만 남게 만든, 괴이한 정책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만든 이 괴이한 정책은 오늘날까지 기독교에서 지켜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독립은 독립투지와 독립운동에 의해 이뤄졌다. 영적인 독립도 마찬가지다. 지금,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새 언약 진리를 회복하기 위해 마지막 종교개혁운동에 열심을 내는 이들이 있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성도들이다. 진정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이들과 함께 새 언약 진리를 전파하고 바른 소리를 낼 것이다.

<참고자료>
1. 식민지, 두산백과
2. 일제강점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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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thoughts on “이상한 식민지 정책”

  1. 일제의 식민통치 속에서도 민족의 얼을 고취시키고 민족문화를 보존하고 부흥시키기 위한 훌륭한 선구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사단이 통치하는 이 죄악세상 가운데, 성경의 새 언약 구원의 진리와 하늘왕조의 문화를 전파하는 하나님의 교회로 이 죄인을 불러주셔서 마지막 종교개혁자로 삼아주신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 진정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 지나가는 행인

    작년이 종교개혁운동 500주년이라고 들었습니다. 500년 전에는 완전한 종교개혁을 이루지 못했는데, 이제는 완전한 종교개혁을 하나님의교회에서 꼭 이루어주시길 바랍니다.

  3. 독립운동가들이 정말 목숨을 걸고 조국을 되찾기 위해 열심히 독립운동을 했던 것처럼 오늘날 사단에 의해 새언약 진리가 바뀌어버린 이 상황속에서 종교개혁자들이 찾지 못했던 새 언약 진리를 영적 독립운동가로서 그 진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교회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 무한 감사드리는 자녀가 되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4. 행복하려면

    나라를 빼앗겼던 치욕과 설움이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고 독립운동을 촉발시켰다. 인류는 사단의 미혹으로
    하늘나라를 잃어버린 채 죽음의 땅에서 불안한 하루하
    루를 살아가고 있다. 천국을 회복하려는 정신과 진리를 쫓아 믿음의 행함으로 하루속히 하늘독립을 이루어
    야 하겠다.

  5. 사단의 식민지 정책에 넘어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믿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6. 사단의 식민지 정책에서 벗어날 수 잇는 방법은 종교 개혁자들이 찾지 못한 새언약의 규례를 되찾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새 언약의 규례를 찾기위해 노력하는 자녀가 되겠습니다

  7. 사단의 문화정치에 속지말고 하나님 알려주신 참 계명을 지키기위해 노력하며 천국으로 나아가야겠다.

  8. 사실 저도 세상것을 좋아했는데 이글을읽고 하나님께 너무죄송스럽다는 마음이 제일먼저 들었습니다.앞으로는 간교한사단의정책에서벗어나 하나님만을 바라볼수있는자녀가되겠습니다.
    이러한 생각을주시고 교훈을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드립니다.

  9. 영적독립을 위해 저도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으로서 온 힘과 정성을 다해 독립운동을 하는 자녀가 되고싶습니다.

  10. 이 글을 읽다보니 지난 삼일절 즈음 유관순열사에 대한 영화가 떠오릅니다. 나라를 빼앗긴 분노에 모진
    고문과 치욕을 견뎌내는 소녀의 모습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사단의 미혹으로 빼앗긴 하늘나라,
    외국인과 나그네가 되어 살아가는 유한한 이 세상, 한 줌 재로 끝날 허무한 인생이 아닌 하늘독립을 위한
    투사로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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