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구원자가 이스라엘에 등장하여 메말라 죽어가는 백성들에게 생명수를 받으라고 외치실 것을 계시로 보고 기록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이사야 55:1~7)
이 예언은 약 700년 후에 육신을 입고 등장하신 하나님, 예수께서 성취하셨다(요한복음 7:37~39). 예수께서는 공생애 3년 동안 백성들 가까이에서 생명의 초대장을 내미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를 거부했고 사마리아의 한 여인은 이를 받아들였다. 유대인들은 자기 나름대로 설정한 하나님의 모습을 고집했고,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여인의 겸손한 태도는 마침내 생명수의 근원이신 구원자를 영접하는 축복으로 이어졌다.
목차
1. 사마리아 여인과 구원자의 만남
– 대화 #1
– 대화 #2
– 대화 #3
– 대화 #4
– 대화 #5
– 대화 #6
– 대화 #7
2. 생명수 주시는 분이 다시 등장한다면?
사마리아 여인과 구원자의 만남
수세기 동안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다. 하나님의 선민으로 혈통을 목숨처럼 여기는 유대인들은 이방의 민족과 혈통이 섞인 사마리아인을 멸시하고 상종조차 하지 않았다(열왕기하 17:24, 요한복음 4:9). 그러나 이례적으로 예수께서는 사마리아에서 만난 여인과 대화하며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셨다.
대화 #1
예수는 낮 12시쯤 사마리아 수가(Sychar)에 위치한 야곱의 우물가에 도착하셨다. 그는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가지셨기에 정오의 뜨겁게 내리쬐는 볕과 긴 행로에 목마르고 피곤하셨다. 이때 사마리아 여인 한 명이 우물물을 길으러 왔다. 예수께서는 그녀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청하셨다(요한복음 4:6~7). 육신을 입고 등장하신 하나님과 여인의 첫 만남이었다.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에게 물을 달라는 예수의 요청에 적잖이 놀랐다.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았던 유대인이 물을 달라고 요청하였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여자가 ···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요한복음 4:9)
대화 #2
예수님은 이 땅에서 멸시받는 사마리아 여인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당신이 누구인지 말씀을 통해 알려주셨다.
예수께서 ··· 네가 만일 ···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한복음 4:10)
그러나 여인은 자신의 눈앞에 생명수를 가진 메시아가 계시는데도 알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평범한 사람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선생님, 선생님에게는 두레박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선생님은 어디에서 생수를 구하신다는 말입니까? 선생님이 우리 조상 야곱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라는 말입니까?
(새번역 요한복음 4:11~12)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과 대화하고 있는 상대방이 야곱과 견줄 수 없을 만큼 위대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생명수를 구한다면 주겠노라고 하신 예수님을 의심했다. 그녀는 생명수의 의미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대화 #3
아무것도 모르는 여인에게, 예수께서는 진리를 하나하나 설명해주셨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
(새번역 요한복음 4:13~14)
예수께서는 기나긴 역사와 유구한 세월을 자랑하는 야곱의 우물물을 마시더라도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물을 마시면 순간은 갈증이 해소된다. 그러나 그 시간은 매우 짧다. 10분 혹은 1시간 후에 또 갈증이 난다. 아무리 좋은 물을 마셔도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심한 갈증이 나고 목마르다. 예수께서 주시는 생명수는 육적인 목마름을 해소시켜줄 실제 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여인은 문자 그대로의 물을 생각했다.
선생님, 그 물을 나에게 주셔서, 내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나오지도 않게 해주십시오.
(새번역 요한복음 4:15)
여인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 있다면 그것을 마시고 싶었다. 왜냐하면 물을 길으러 매번 힘겹게 우물까지 나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대화 #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요한복음 4:16)
예수는 갑자기 화제를 바꾸셨다. 왜 그러셨을까. 당신은 영의 것을 이야기하는데, 여인은 자꾸만 육의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예수는 생수의 근원인 당신을 믿어야 영적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여인은 계속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을 생각하니 대화가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요한복음 4:17)
사마리아 여인의 가정사는 복잡했다. 그녀는 실타래처럼 얽힌 자신의 가정사를 설명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다만 남편이 없다고 대답했다.
대화 #5
예수께서는 여인이 숨기고자 했던 부분을 아시고 그녀의 가정사를 드러내셨다.
예수께서 ··· “남편이 없다고 한 말이 옳다. 너에게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바로 말하였다.”
(새번역 요한복음 4:17~18)
여인이 어떤 연유로 복잡한 가정사를 갖게 되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분명한 것은 그녀가 기구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여인은 일면식도 없으면서 자신의 형편과 속사정, 삶의 근황을 훤히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이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고 드디어 처음으로 영의 것을 질문했다.
여자가 말하였다. “내가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이십니다. 우리 조상은 이 산(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선생님네 사람들은 예배드려야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새번역 요한복음 4:19~20)
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고,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Mt. Gerizim)에 있는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다. 여인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를 놓고 서로 대립하는 문제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계신, 선지자로 보이는 예수께 그 진실을 알아보고자 했다.
대화 #6

(예수께서) “여자여, 내 말을 믿어라. 이 산이든 예루살렘이든 아버지께 예배 드리는 장소가 문제되지 않을 때가 오고 있다. ··· 아버지께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들이 ··· 진실한 예배를 드릴 때가 오는데 바로 이때이다.
(현대인의성경 요한복음 4:21~23)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의 오랜 의문이었던 예배 장소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리심산이든 예루살렘이든 어디서 예배를 드리느냐의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하셨다. 장소와 형식에 얽매이던 ‘옛 언약’의 예배 방식은 물러가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새 언약’의 예배의 때가 도래했음을 알리신 것이다(예레미야 31:31~33). 그때는 바로 지금이다. 지금 어디서든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뜻이다.
새 언약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여인에게 구원의 초대장을 내밀고 계신 것이다. 이제라도 메시아를 알아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대화 #7
여자가 예수께 말했다. “나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압니다. 그가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에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다”
(새번역 요한복음 4:25~26)
예수의 대답은 여인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은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려왔다. 그토록 기다려온 메시아가 놀랍게도 보잘것없는 땅인 사마리아에, 그것도 사람의 모습으로 서 계신 것이다. 고작 물 한 잔을 부탁하는 사람이 실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하나님 곧 생명수의 근원이었던 것이다(이사야 55:1~3). 그제야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둔 채 서둘러 마을로 돌아가서 메시아가 사람 되어 오셨음을 전파했다(요한복음 4:28~29).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이 있다. 여인은 왜 쉽사리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을까. 분명히 자신의 눈앞에서 대면하여 긴 대화를 나눴음에도 그녀는 좀처럼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다. 여인이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무지해서였을까.
그렇다면 사마리아인이 아닌 정통 유대인들은 예수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과연 그들은 예수의 근본을 알아봤을까. 유대인들은 예수를 요셉의 아들로만 생각했고(누가복음 3:23), 예수를 배우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했고(요한복음 7:15), 예수가 한낱 사람이면서 하나님 행세를 한다고 생각했다(요한복음 10:33). 서기관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의 증거를 거짓으로 치부했다(요한복음 8:13).
이것이 당시 유대인과 종교 지도자들의 눈에 비친 예수의 모습이었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3년 동안 생명수를 주시면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내셨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예수님을 믿고 따라다니는 사람들조차 그를 선지자 정도로 생각했다(마태복음 21:10~11, 16:13~14, 누가복음 7:16, 요한복음 6:14). 오랫동안 예수님과 동행했던 제자 빌립도 예외는 아니었다(요한복음 14:7~9).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쉽사리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생명수를 받으라고 말씀하신 분의 모습이 너무 평범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 그는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영원토록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셨다(로마서 9:5, 빌립보서 2:6~7).
생명수 주시는 분이 다시 등장한다면?

신약성경에는 생명수를 주시기 위해 ‘사람’으로 등장하신 메시아의 모습과, 그를 대하는 종교 기득권층의 민낯이 낱낱이 담겨있다. 2천 년 전 유대인과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 나름대로 설정한 하나님의 모습이 있었다. 옛적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반포하셨을 때처럼 일곱 우레와 뇌성과 번개로 말씀하시는 위엄이 가득한 모습이어야만 했다(출애굽기 20:18~19). 하나님은 오직 영으로만 존재하셔야 했다. 때문에 자신들이 설정한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렇게 잘못된 설정에서 시작된 믿음은 군중과 여론과 거짓 증인들을 동원해 예수를 ‘정신이상자’, ‘종말론자’, ‘이단자’로 몰아세웠다.
반면 사마리아 여인은 그들과 달랐다. 그녀는 기득권의 교리를 잣대로 예수를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신을 내려놓고, 겸손히 말씀을 경청했다. 이는 생명수의 비밀, 곧 사람으로 오신 메시아를 영접하는 축복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과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기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경의 마지막 장은, 또다시 생명수를 주시기 위해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하실 메시아를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요한계시록 22:17)
성경에는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베드로 등 훌륭한 믿음의 선진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이 생명수의 근원이라고 하지 않는다. 생명수를 주실 수 있는 권능은 오직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예레미야 2:13, 요한복음 4:14).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이 생명수를 성령과 신부께서 주신다고 하셨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령과 신부가 구원자 곧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성령은 성삼위일체의 하나님 곧 아버지 하나님이다(이사야 9:6, 고린도전서 2:10~11, 로마서 8:26, 34). 그렇다면 인류에게 생명수를 주시는 또 한 분의 하나님, 신부는 누구일까. 성경 『요한계시록』과 『갈라디아서』에는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를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 ‘성도들의 어머니’라고 기록했다(요한계시록 21:9~10, 갈라디아서 4:26, 31).
시대는 변했지만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풀지 못한 영적 갈증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갈증을 때론 돈으로, 때론 여가로, 때론 취미로 채우려고 노력하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공허함과 허전함이 여전하다고 말한다. 아모스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다(아모스 8:11~13). 그 풀리지 않는 갈증을 해갈할 방법은 오직 생명수의 근원이신 성령과 신부에게 나아가는 것이다.
생명수 주시는 성령과신부가 누구신지 알았다면 다 하나님의교회로 올텐데…
마지막 예언을 따라 생명수를 주시는 이때 성령과 신부와 함께 있다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생명수를 받으러 늘 나아가겠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갈증을 해갈할 방법은 성령과 신부를 만나는 것뿐이네요
사마리아 수가에 있는 잃어버린 딸을 바라보셨던 구원자의 애타는 눈길이, 이제는 우리에게 맞추어 있다는 말이 마음에 참 많이 와닿네요~
하나님이신데도 죄인인 우리들을 위해서 이땅까지 오실 수밖에 없으셨던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가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리를 살리러 오신 하나님의 사랑에 그저 감사하다는 말씀 외에는 드릴것이 없습니다.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나의 생각을 바리는게 젤 어려운것 같습니다. 자신의 모든걸 버리고 낮은자세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자가 되고 싶습니다 🙂
사마리아 여인이 긴대화에도 불구하고 구원자를 알아보지 못한것은, 구원자의 모습이 평범했기 때문이지요. 오늘날 평범한 모습으로 임하신 성령과 신부도 이토록 알아보기 힘들겠지요. 그러나 기득권의 잣대가 아닌 말씀에 경청했던 여인의 믿음을 본받는다면, 우리 가까이에 계시는 성령과 신부를 만날수 있겠지요
사마리아여인처럼 보잘것없고 가련한 우리를 위하여, 하늘영광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시어, 감히 우러러 볼수없는 구원의 축복을 허락하시니,성령과 신부되신 엘로힘하나님께 영원한 영광과 감사를 올립니다
성령과 신부되신 아버지 안상홍님 하늘어머니를 영접해야 구원받을수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사랑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겸손히 말씀에 귀 기울여 성령과 신부를 영접한 우리들은 이세상에서 가장큰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