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종교는 얼마큼 가까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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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는 면죄부 판매에 대해 항의하며 ‘95개조 반박문’을 독일 비텐베르크 성의 교회 문에 붙였다. 이 반박문은 독일 민중들을 계몽시켰고 종교개혁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2017년의 기독교는 안타깝게도 개혁과 거리가 멀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패스티브는 ‘종교개혁 500주년 특집’을 통해 기독교의 민낯을 살펴보고, 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진단해보고자 한다.


정치. 이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뜻한다는 설명과 함께,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는 부연이 덧붙는다. 그렇다면 ‘종교’라는 단어의 의미는 무엇일까. 국립국어원에서는 종교를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라고 정의했다.

정치는 보이는 삶에, 종교는 보이지 않는 삶에 영향을 끼친다. 두 개념은 완전히 상반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정의대로라면, ‘정교유착(政敎癒着)’이라는 단어는 도대체 왜 생겨난 것일까?

종교개혁 500주년,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다

권세를 등에 업은 종교 지도자, 사두개인

종교개혁 500주년 특집의 소재인 ‘정교유착’과 관련해서 꼭 등장해야 할 유대교의 한 교파가 있다. 성경에서 바리새파 다음으로 자주 언급된 또 하나의 교파. 바로 사두개파(Sadducees)다.

사두개인

‘사두개’라는 이름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대제사장이었던 ‘사독’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사독은 다윗에게 충성을 바쳤던 인물로, 다윗의 명령을 받아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했다. 이후 사독의 가문은 아론 혈통의 으뜸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료를 토대로 볼 때, 스스로를 사독의 후손이라 지칭하던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혈통부터 다르다는 은근한 교만을 품었으리라 추측된다.

사두개인들은 유대 사회의 최상층이었다. 이들은 하스모니아 왕조(BC 142년부터 63년까지 이어진 이스라엘의 마지막 독립왕조)에서 번제 의식을 주관하고 십일조를 거뒀던 제사장이자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로마와 긴밀하게 협조했다. 적절한 처세(?) 덕분에 그들은 하스모니아 왕조가 몰락하고 로마의 식민 통치가 시작되는 변혁의 시기에도 변함없이 권세를 유지했다.

권력에 아첨해서라도 세속적 안락을 지키려 했던 그들의 평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AD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하면서 사두개인들은 저절로 몰락했다. 제사장들이 직무를 볼 성전이 불타버리자 그들의 모든 직책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영원할 것 같던 그들의 영화는 참혹하게 불타는 예루살렘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정치와 야합하는 오늘날의 종교 지도자들

종교개혁 500주년

과거의 종교는 정치권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다. ‘교황은 해, 황제는 달’이라는 표현은 종교의 힘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하게끔 한다. 그 과정에서 종교는 본연의 순수함을 잃고 타락했다. 이는 결국 종교개혁을 불러일으키는 방아쇠가 되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과거와 달리 정치와 종교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형국일 뿐, 권력을 향한 욕망은 형태를 바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6년 대한민국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개신교의 여러 연합회가 한 정당을 향한 찬동의 뜻을 밝혔다. 이는 단순히 투표에 참여하는 정도로 볼 일이 아니다. 수많은 신도를 보유한 종교 지도자들이 특정 이념에 치우친 설교로 물의를 빚은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편향적인 설교를 들은 신도들이 과연 객관적으로 투표를 할 수 있을까?

한국의 종교계는 정치권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야욕을 점점 노골화하고 있다. 한때 여러 개신교 연합회들이 선거 개입 지침서나 기독교공공정책을 내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논란을 빚었다. 단순히 투표에 참여하는 수준을 넘어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려는 움직임까지 보인 것이다.

정교유착의 원인과 비판

종교개혁 500주년

종교인들이 정치인들에게 자꾸만 손을 내미는 이유는 한마디로 ‘세속적 욕심’ 때문이다. 정치인들을 통해 이익을 취해보려는 것이다. 실제로 한 정치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거를 앞두고 동성애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분도 있었다. 개신교계에 반대하는 걸로 비쳐지면 안 되니까”라고 말했다. 종교단체들마다 지지하는 정당이 존재한다. 이러다 보니 정치인들도 발언을 할 때 종교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종교가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이 상황이 과연 바람직할까.

종교 지도자들의 정치 개입은 종교계 안팎으로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는 몇몇 종교 지도자들이 특정인을 지지한 사안에 대해 “몇몇 목사들이 ‘범기독교’의 이름으로 누군가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몇몇 목사들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라며 일침을 가했다. 한 종교연구기관의 대표는 “무조건 성직자를 따르는 신도를 동원하는 방식으로 정치에 개입해 특정 견해를 관철하려는 행위는 정교분리의 원칙에 어긋나고 종교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도 어렵다”고 평했다. 종교 지도자들이 신도들을 권력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행위는 분명한 잘못이라는 의견들이 많다.

정치와 종교는 결코 가까워서는 안 된다

종교개혁 500주년

서두에서 정치와 종교의 사전적 정의를 알아본 바 있다. 참고로 ‘유착’이라는 단어는 ‘사물들이 서로 깊은 관계를 가지고 결합하여 있음’이라는 뜻이다. 단어의 뜻만 봐도 분명히 알 수 있다. 정치와 종교는 전혀 다른 영역이며, 결코 가까워서는 안 된다. 공교롭게도 유착이라는 단어의 예문 역시 ‘종교와 권력이 유착 관계를 맺다’였다. 참으로 유감스럽다.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이, 더 나아가 종교 지도자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세속적 권력에 눈이 멀어 무엇이 우선인지 분간을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치와 종교가 욕심을 매개체로 삼아 가까워지는 순간 서로의 본질은 흐려지고 만다. 종교인은 정치에 참여할 수 있지만 교회가 정치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그 배경에 이권을 노리는 탐욕이 숨어 있다면 이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랐던 초대교회는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다. 그러나 고결했던 처음의 믿음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즉위한 후 기독교도 큰 변혁을 맞았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국교화하고 종교 지도자들을 고위직에 세워줬다. 교회는 특권 의식에 취해서 천국보다 세속의 기쁨을 추구하게 되었다. 경건하던 성직자들은 방탕해졌고 하나님 대신 황제를 칭송했다. 순교마저 각오하던 거룩한 신앙이 달콤하고도 치명적인 ‘특권’이라는 유혹 앞에서 맥없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종교개혁 500주년. 종교계로서는 어느 때보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언제라도 되풀이된다”는 유명한 격언을 가슴에 새겨야 할 시기다. 신앙은 세상의 권세와 결탁하면 어김없이 순수함을 잃고 잘못된 길로 들어선다.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댓글
  1. 비타1004

    세속적인 것보다 천국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2. 그린스타

    진리가 없기에 세속적인 욕망이 종교계에 넘치고 있습니다. 500년전 종교 개혁이 요구되었던
    시대를 반면교사 삼아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종교인들의 회개를 보고 싶습니다.

  3. 항상 new

    세속적인 욕망은 나도모르는사이 생기는것같다.
    깨어있고, 정신차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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